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6
보스톤코리아  2008-06-24, 00:07:50 
백린(역사학자)


<한중관계>
한편 평양으로 직접 쳐들어가던 주라후(周羅候)장군이 이끄는 5만의 수군은 황해를 건너오다 풍량을 만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익사하고 살아 남은 자는 몇백에 불과하였다. 수문제 양견은 고구려 정벌에 많은 병사를 잃었고 또 30만 대군이 출정에 따른 물자 손실도 엄청났던 것이라 그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가 어려웠다.

태자 양용이 부왕의 신임을 잃게되자 태자의 자리를 노리는 형제간에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수나라 문제양견에게는 4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태자 양용(楊勇)이고 둘째는 진왕 양광(楊廣)이며 셋째는 양건(楊建) 그리고 넷째는 양량이다. 그런데 질투와 야심이 충만한 진왕 양광은 태자 양용에게 도전하여 태자의 자리를 빼앗은 다음 그를 살해했다.

양광의 야심은 태자의 책봉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4년 후의 서기 604년에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 문 황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수나라 황제의 옥좌에 오른다. 악명높은 수양제의 폭정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넷째아들 양랑애 태자 양용과 아버지 문황제를 살해한 양광에 반기를 들고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숙부 양소(楊素)의 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살해되고 만다. 이렇게 수양제 양광은 아버지와 형제를 다 죽이고 난 다음에도 흡혈귀 같이 피가 모자랐던지 반대하는 자는 닥치는 대로 죽여버렸다. 이 같은 폭군의 학정에 민심이 이반하지 않을 수 없다.

수양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하여 607년에 변경순수(邊境巡狩)에 나섰다가 돌궐의 추장 이계민의 장막에 장막에 들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고구려의 사신이 계민의 처소에 와 있었다. 돌궐의 추장 이계민은 고구려 사신을 숨겨놓지 못하고 같이 수양제를 만나보게 했던 것이다.

수양제는 뜻하지 않게 고구려 사신의 예방을 받자 이외의 일이라 혹시나 두나라가 어떤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수나라가 두려워했던 것은 서북쪽의 돌궐과 동북지방의 고구려였다. 5세기경 몽고 고원에서 일어난 터키계의 돌궐은 6세기 초에는 몽고 일대를 장악하고 중앙아시아를 통합하는 대제국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서기 581년 돌궐은 동서의 두 나라로 분열된다. 이후 동돌궐을 계속 돌궐이라고 했다. 국력이 약해진 이 돌궐은 서기 601년 수나라에 부속된다. 그러나 동돌궐의 추장 이계민(李啓民)은 만리장성 넘어에서 중국의 사정을 엿보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2주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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