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흥망과 발해국의 태조 대조영 5
보스톤코리아  2008-06-09, 23:13:58 
백린 역사학자


<한중관계>
북위(440-534) 통치의 100년간은 중국의 북반부가 비교적 안정된 상태였다. 북위는 불교를 깊이 신앙하여 중국의 불교문화를 꽃피운 왕조이기도 하다. 당시의 운강의 석굴암과 낙양근교의 용문석굴은 역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미술사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그 북위가 6세기에 접어들면서 말기적인 증상을 보이다가 결국 동위와 서위로 분리된다. 그리고 서기 535년에는 다시 동위가 북제로 되고 서위는 북주로 바뀐다. 북주의 무제(武帝)는 서기 577년에 북제를 병합하여 중국의 북반부를 통일한다.

이렇게 하여 강력한 세력을 얻은 북주의 무제는 북변의 돌궐을 정벌하려고 출정하였다가 578년에 병사하고 만다.

북주의 무제가 사망하자 북주는 무능한 태자인 선제(宣帝)가 왕위를 계승한다. 이 선제는 황제로서의 품위를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색에 빠져 대업을 이끌어 나갈 능력이 전혀 없는 방탕한 군주였다. 이러고서 어찌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선제는 그 2년(579)에 겨우 7세밖에 안되는 태자 우문연(宇文淵)에게 황제의 위를 선양하고 자기는 천원황제(天元皇帝)라 자칭했다.

그런데 그는 한술 더떠서 모든 고아명이나 사람의 성명 그리고 호칭에 천(天), 고(高), 대(大)자를 사용해선 안된다는 금지령을 내렸다. 고자와 대자는 천 즉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기 이외에는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과대망상증에 걸린 선제는 580년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말았다.

7세밖에 안되는 어린 것을 황제의 옥좌에 올려놓으니 그것이 무엇을 안다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군부를 장악한 대사마(大司馬) 양견(楊堅)은 자기의 어린 딸을 황후로 들여보내서 대례복을 입혀 황후마마라고 조아리니 이 어찌 가관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양견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황후의 아버지라는 막강한 권력의 위치에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드이어 양견은 581년 어린 황제를 압박하여 선위시키고 자기가 황제의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북주의 황족인 우문씨(宇文)일족을 모두 참살한다. 딸이고 사위고 다 없다. 정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권력다툼에서 지면 죽음 뿐이다.

필자가 여기서 중국의 역사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가 중국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우리의 고대사를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이 남북조로 갈려서 왕조가 번번히 바뀌는 동안에도 고구려는 그 때  그때의 왕조에 사신을 보내서 "요동개국공 고구려왕"임을 인정받아 독립국으로서의 기반을 공고히 다져왔다. 그리고 중국세력이 요동으로부터 후퇴하자 고구려는 그 세력을 한반도 남쪽으로 돌려 백제와 신라를 위협하게 된다.

6세기 이후에 있어서의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 3국 관계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자.

서기 581년 북주를 멸망시키고 수나라를 세워 황제의자리에 오른 양견은 고구려의 평원왕에게 "대장군 요동군공"이라는 벼슬을 주면서 그 조서에 이르길 "짐은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의 백성을 애육하고 바 모퉁이에 있는 왕을 위임하여 교화를 천하에 선양함이라....그대 나라가 비록 협소하고 인구가 적으나....이 천하의 모든 인민이 짐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 운운. 황제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은근히 고구려를 협박하는 것이었다. 이제 북주의 모든 권력은 양견의 수중으로 넘어간 것이다.

양견은 다음해에 둘째아들 양광(후일 수양제)을 시켜 남조의 진나라를 일격에 멸망시키고 서기 577년에 중국을 완전히 통일하였다. 이후 고구려는 수나라와 맞대결하는 역사가 전개된다.

서기 590년 고구려의 평원왕이 서거했다. 수문제는 사신을 보내 애도를 표하는 동시시에 제26대의 영양왕을 대장군요동개국공 고구려왕으로 책봉하였다. 그리고 거북(관복)한 벌을 증정해왔다. 영양왕은 수문제의 조문에 대하여 사신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영양왕 2년(598)에 말갈병 만여명을 이끌고 요서의 금주성을 공략했다.

요서지방에서는 일찍부터 유목민족인 거란족과 말갈족 그리고 농경민인 한족과 부여족이 혼재해 살고 있었다. 유목민족이 원래 호위구도(好爲구盜)라 동족들간에 자주 분쟁을 일으켜 왔다.      
                                  
위충은 수문제에게 장개를 올려 고구려 영양왕의 금주성 공략을 보고했던 것 같다. 수문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고구려 정벌을 강행하려고 했다. 먼저 수문제는 조서를 보내 영양왕에게 주었던 작위를 빼았고 넷째아들인 한왕 양량을 고구려 정벌의 대원수로 삼아 수륙양면으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였다.
이것이 고구려와 수나라가 본격적으로 대결한 제1차전쟁이었다. 그런데 요동천리길은 평탄하지만 않았다. 30만 대군의 행군은 9백리에 달했다. 양량이 인솔하는 군사가 만리장성의 관문인 임유관(지금의 산해관)에 이러렀을 때 큰 홍수를 만나 식량이 다 되고 거기에 역병마저 돌아 많은 병사가 죽어 나갔다. 근근히 요하 강변까지 행군하였으나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다. 이때 마침 구구려 영양왕이 수군의 장막에 사신을 보내 사죄의 뜻을 표하였음으로 한황 양량은 그것을 구실로 삼아 회군할 수 있었다.   <2주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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