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침 뱉기
보스톤코리아  2008-05-19, 16:40:53 
먼 훗날의 일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면 지금의 실수는 아마도 적어지지 않을까.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못내 내색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나타내고서야 알아차리는 어리석음이라니. 차곡차곡 쌓인 지나온 시간을 하나 둘 들추다 보면 어느샌가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을 보며 부족하고 어리석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시간을 지내온 세월의 뒤안길에서 누구를 탓할 것이며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다만, 모두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얼마만큼 지혜롭게 맞이하고 대처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가족이라는 것이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남편의 가족인 시집과 그 외의 또 다른 시댁 가족들 그리고 아내의 가족인 처가의 가족들을 한데 묶어 생각해보면 만만치 않은 가족의 숫자이다. 미국에 살면서 시댁과의 문제를 거론한다면 아마도 '피식~' 웃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까지 고부간의 또는 시댁과 며느리와의 갈등이라니?"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찌 사람 사는 일이 여기 따로, 저기 따로일까. 사람 사는 곳은 거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조금씩 다른 개인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전체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모양과 색깔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처음 결혼을 한 어린 며느리의 생활이 세상을 겪고 경험했던 시 어른들 눈에 찰리는 만무하다. 그 시어머니도 철없던 그 시절이 있었을법한데 말이다. 하지만, 며느리를 맞이하고 시어머니가 되면 그 옛날 갓 시집온 새색시 모습을 잊는가 보다. 그나마 부족한 것을 당사자인 며느리를 앉혀놓고 야단치는 시어머니나 시아버지는 고마운 분들이다. 하지만, 때로는 눈에 차지 않는 며느리의 불만을 밖으로 내어 놓는 시부모들은 참으로 난감한 입장이다. 시부모와 맞서 며느리가 그 얘기는 아니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으며 그런 자리가 또 어찌 마련이 될까. 남의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입을 통해 '그 집 며느리는 어떻더라~'라는 얘기는 눈덩이가 되어 잘도 굴러다닌다.

또한, 어찌 며느리만 시부모에게 이런 일을 겪겠는가. 언제나 말없이 조용하고 법 없어도 살만한 시부모도 며느리 자식과의 마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끙끙거리는 일이 왜 없겠는가.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속이 상하고 답답하니 또래의 동네 친구들에게 속상함을 내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부모의 흉을 내어놓는다고 시원할 줄 알았던 마음은 시원하기는커녕 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의 자상하고 따뜻한 시부모 자랑거리에 속이 상하고 자존심만 상한 것이다. 그야말로, 혹을 떼어내려다 되려 혹을 붙이고 돌아온 꼴이 되고 만 일이다.

그나마 친정 가족들이 곁에 있는 며느리들의 입장은 조금은 다를 게다. 시집에서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어머니나 언니와 나눌 수 있으니 그 자리에서 '흉이라도 실컷 보고 끝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곁에 가족들 하나 없이 끙끙거리다 털어놓은 시집 얘기가 되돌아서 시댁 가족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되고 만다. 옛말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어라'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속 얘기는 '철저한 믿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이어야 한다. 어설픈 관계에서 속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구설수'에 휘말리고 사람 꼴이 '어처구니없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결혼 초에는 해내지 못했던 생각이다. 한 20여 년을 시집살이하고 시댁 가족들을 겪다 보니 경험에서 얻어진 지혜일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며느리 흉 아닌 흉이 돌고 돌다 귀에 들려올 때면 어찌 그리 시부모님께 섭섭하고 속이 상하던지 말이다. 그야말로 중간에 있는 남편(아들)만 애를 먹는 일이 되기도 한다. 가끔 동네의 갓 시집온 새댁들이나 젊은 애기 엄마들을 만나면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그 시절(20여 년이 된)의 나와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주부들은 더욱 똑똑하고 지혜로우니 시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 담아두지 않고 표현하니 쌓이지 않아 관계는 더욱 좋을 것이다. 서로 속상하다고 내 뱉은 말이 결국 '내 얼굴에 떨어지는 침'이 되고 마니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가족의 사랑이길 바라며...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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