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금같은 대통령의 언동
보스톤코리아  2008-04-28, 16:39:15 
김은한  (칼럼니스트)


1953년의 휴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종료된 다음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초청으로 1954년 미국 상하 양원 특별 회의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6.25를 겪은 세대들은 모두 기억하는 유명한 연설이다.

그는 미국 의원들에게 링컨대통령이 말한 "노예반 자유반으로는 미합중국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노예 해방을 위해 끝까지 싸워 승리하게 되었다"라는 일화를 예로 들면서 "공산주의반, 민주주의반으로는 평화 회복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휴전협정은 지혜롭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하였다.

평생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공산주의로 부터 나라를 지켜내려는 그의 연설에 미국의 조야는 경의를 표하고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피를 흘리고 함께 싸운 혈맹으로 남아 있게 된것이다. 그만큼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나라 국민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위상을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것이다. 하물며 외국을 방문해서는 그나라 국민들의 정서를 존중하며 신뢰를 받는 쪽으로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한미관계는 결코 순탄한것이 아니었다. 외교적 관례나 예의를 도외시한 돌출발언이나 상대방을 몰아치는 언동으로 본인에 대한 이미지가 손상을 입을 뿐더러 대한민국에 대한 의구심을 키워온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8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회담에 관여한 마이클 그린 백악관 아시아 태평양 선임 보좌관의 말을 빌려보기로 한다. 노대통령은 2003년 5월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회담 도중에 노대통령은 대뜸 " 한국인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까봐 공포에 쌓여 있다"고 하자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답변하자 노대통령은 아주 만족해 하면서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할것을 약속 하였다. 이것으로 두대통령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은 것이었다. 당시 부시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으로 프랑스, 독일과 동맹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비난을 받던 처지였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우방과 동맹 관계를 강화 했다는 것은 득이 되었고 노대통령은 무디스 회사가 매긴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상황이라 한미동맹 강화는 신용도와 외국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첫번째 회담만이 두 대통령이 기분좋게 만난 최초이자 마지막 자리가 된것이다. 두번째 만남인 APEC 정상회담에서는 노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 수 있다며 북한을 압박하지 말것을 요구하자 부시는 "고양이가 다섯이 되니 걱정 없다" (6자회담을 의미)고 하니 노대통령이 그중 제일 약한 고양이가 한국이라며 부시와의 틈을 넓히게 되었다.

2004년 칠레 APEC 회담 때는 "북한의 핵보유 주장도 일리가 있다"라는 돌출 발언으로 부시를 격분시켰는데 이 발언으로 노대통령은 두고두고 미국 조야 강경파들의 목표가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의 정체성에도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다섯번째 회담에서는 마카오 방코델타 아시아 은행의(BDA)북한 자금 동결문제를 놓고 두정상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노대통령은 6자회담 합의가 막성사된 가운데 왜 BDA자금 동결조치를 하느냐고 반대의견을 거듭말해서 부시대통령을 격분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한 달에 한 두번씩 노대통령의 반미 발언을 보고 받고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고 한다.
사실 노대통령은 미국을 위해서 많은 도움은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실리를 챙기지 못한 것은 그의 발언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외교상의 예의에 어긋나고, 자신의 의견을 먼저 앞세우는 돌출발언에다가 상대방의 정서를 헤아리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동맹체인 한미 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시 작전권 환수로 대한민국의 방위력은 떨어트렸지만 전세계에 미군을 재배치 시키려는 미국에는 큰 도움을 주었고, 이라크 전쟁에는 영국 다음으로 대규모 파병을 해주었으며, 한미 FTA체결, 주한미군 기지 이전등으로 그는 미국을 위해서 많은 역할을 했지만 그것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은것이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나 독일의 슈뢰더 총리는 부시에게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VIP대접을 받으며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에 초대를 받았지만 우리 한국 대통령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노대통령을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이나, Camp David에 초대하자고 줄기차게 건의 했지만, 노대통령이 방미 전후에 충동적인 반미 발언을 하게되면, 부시 대통령이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백악관 참모들이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대통령에게 결코 호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인에 대한 푸대접으로 덩달아 대한민국이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었다. “반미면 어떠냐”라며 집권했던 노대통령은 부시와 첫번째 정상회담 후에 "기싸움에서 노대통령이 완승을 거뒀다"고 거들던 386측근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동맹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한국의 새정부 출범 후에 접촉한 미국인사들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서둘러야 할것은 지난 10년간 상실한 신뢰회복"을 주문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에 승리하고는 정몽준 특사와 전화를 통해서 실용적 한미관계를 내세우며 소원해진 양국간의 신뢰회복을 제의하였다. 반미노선을 취했던 것으로 여겨진 노무현 전대통령을 부정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림돌이 제거된 것이다.
답변은 Camp David 로의 초대였다. 한미관계의 새로운 도약은 첫날 양국정상들간의 호감있는 대화로 부터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부시대통령은 "나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는 내가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맺었던 각별한 관계처럼 될 수있다"는 말처럼 금번 회담으로 두정상과 양국간의 상호신뢰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한국보다 더 좋은 우방은 없다. 한국이 곤경에 처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미국은 평양을 가더라도 서울을 경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거들었다. 두정상은 주요 의제로 1)한미 FTA년내 비준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2)북핵 공조외에 3)한미동맹을 넘어서 21세기 전략 동맹을 약속 하였다. 즉 군사동맹 뿐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문화도 협조 하자는 것이다.  7월에 있을 부시 대통령 방한때 전략동맹을 구체화 할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국가의 진로를 기싸움의 승패에 걸었던 치졸한 과거의 역사가 절대로 반복되어선 아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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