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37)
??????  2024-07-15, 11:34:45 
612년, 14세 풍월주 김호림은 차기 풍월주의 자리를 부제 보종에게로 전하지 않고 김유신에게로 물려주었다. 이렇게 된 경위는 미실이 만호태후를 위로하기 위하여 보종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하여 이루어졌다. 삼한의 영웅이 된 김유신이 보종에 앞서 풍월주에 오른 배경에는 미실과 만호의 사적인 거래가 있었다. 만호태후는 남편 동륜태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개에게 물려서 사망했기에(572년) 왕후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들 백정이 제26대 진평왕으로 즉위하면서 태후가 되었다. 그리고 숙흘종(부모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과 금진낭주이다)과 사통(결혼 여부의 기록은 없다)하여 딸 만명과 만룡을 낳았다. 장녀 만명이 김서현과 야합하여 만노군(현재의 충북 진천)으로 가서 김유신을 낳았다. 김유신은 자라면서 ‘태양과 같은 위용’이 있다는 풍문이 돌았기에 외할머니 만호태후가 많이 보고 싶어 하였다. 결국 만명의 부모(숙흘종과 만호) 는 만명과 서현의 결혼을 인정하였고, 왕경으로 돌아와 살 것을 허락하였다. 드디어 외조모 만호는 어린 김유신을 보고는 “이는 참으로 나의 손자이다” 하며 기뻐하였다. 유신은 595년에 20개월만에 태어난 것으로 삼국사기(권41, 열전1)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 사서에는 그가 15세인 609년에 화랑(풍월주?)이 되었으며, 그를 따르는 낭도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당시에 나이는 만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도 삼국사기와 같은 15세의 나이에 15세 풍월주로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때가 609년이 아닌 612년이다. 김유신은 15세가 되기 전에 이미 화랑도에 입문했으며,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르고 몸(목숨)을 바치기를 원했다. 그래서 유신은 지혜와 용기가 있는 많은 낭도들을 뽑아서 천하를 두루 다니고 고사高士들과 힘써 결속을 맺었으며, 중악中岳에 들어가 노인에게서 비결秘訣을 받기도 하였다. 유신의 신변에는 늘 신병神兵들이 좌우에서 호위했다. 국토순례를 마치고 왕경으로 돌아오자 14세 풍월주 김호림이 풍월주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청했다. 유신은 처음에는 부제인 보종에게로 위임하라며 사양했지만, 이미 만호태후와 미실의 ‘밀약’ 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15세 풍월주에 올랐다. 이에 더하여 외조모 만호태후는 하종의 차녀인 영모로 하여금 유신에게 아내로 맞도록 명하였다. 하종은 미실의 장남이니 영모는 미실의 손녀이고, 유신은 미실의 손서가 되었다. 즉 만호는 미실과 그녀의 아들인 보종의 양보를 받아서 유신을 풍월주에 올렸기에 미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영모를 유신과 결혼시켰다. 보종은 미실의 막내 아들이며 그녀가 가장 아꼈던 아들이라고 한다. 보종의 아버지는 7세 풍월주 설화랑이며, 설화랑은 미실이 괴질을 앓았을때 대신 앓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그 병을 얻어 606년 7월 사망하였다(한편 미실은 완쾌되었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에 관한 기록이 열전 3권(권 제41, 42, 43)을 비롯해 많이 전하지만  첫부인 영모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다만 환갑의 나이에 질여인 지소와 혼인한 기록만 전한다. 지소는 제29대 무열왕 김춘추와 문명왕후(김유신의 동생 문희)의 딸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유신이 풍월주에 오르고 영모와 결혼한 해가 임신년, 즉 612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나이는 삼국사기와 같은 15세이다. 그렇다면 김유신은 595년 아닌 598년에 태어났는가? 화랑세기에는 그가 태어난 해의 기록은 없지만 역순으로 계산한 연도가 598년이다. 3년?...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화랑세기의 필사자 박창화가 원본을 보고 정확하게 필사했다면 7세기에 신라인이 집필한 화랑세기와 450여년이 지난 12세기(1145년) 에 고려인에 의해 완성한 기록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할까? 원본이 출현하는 날까지 의문을 풀 수 없는 숙제이기에, 일본 왕실 도서관 지하에서 잠자고 있을 것으로 확신되는 화랑세기의 원본을 찾아와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김유신이 풍월주에 오르자 김용춘은 자신의 사신으로 발탁하였다. 그러자 김유신은 나라를 위해서 시석矢石을 피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용춘을 따랐다. 용춘의 형 용수 또한 그의 아들 김춘추를 유신의 휘하에 ‘진골화랑眞骨花郞’으로 입문시켰다.
한편 579년 8세 풍월주로 취임한 문노는 화랑도의 조직을 개편하였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좌우봉사랑을 좌우대화랑으로, 전방봉사랑을 전방대화랑으로 만들어서 각기 3부部의 낭도들을 거느리게 했다. 또 진골화랑眞骨花郞, 귀방화랑貴方花郞, 귀문화랑貴門花郞, 별방화랑別方花郞, 별문화랑別門花郞을 두었고, 12~13살의 빼어난 진골眞骨 및 대족大族, 거문巨門의 자제들로 속하기를 원하는 자로써 이를 삼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8세 풍월주 문노조).
이 기록을 근거로 당시의 조직을 보면, 603년에 태어난 김춘추는 10~11살 무렵에 화랑도에 입문하였다. 진평왕이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던 용수의 아들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춘추는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일지라도 당시에는 여전히 왕위계승 서열에 가까이 있었기에 그는 당연히 진골화랑으로 낭도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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