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35)
??????  2024-07-01, 11:33:41 
김용춘은 자신을 위하여 가산을 모두 털어서 호위무사들도 세우고 낭정郎政의 제반 비용도 충당해준 대남보에게 너무나 무심했음을 자책했다. 그의 딸이 자신을 사모하여 유화가 되기도 거절하며 기다렸어도 신선골新善骨의 형성을 염려하여 첩으로 들이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녀가 우물에 몸을 던진다는 자살 소동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첩으로 삼았다. 그와 동시에 당장 대남보를 낭두에서 해임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풍월주 김용춘이 남보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근처에서 아이들이 “처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지고 세 아들 모두 베옷을 입었네” 라는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또한 남보의 집에서는 그의 처와 세 아들이 삼을 쌓아 놓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이 두 광경을 목격한 김용춘은 종자들에게 진작 바른대로 말하지 않은 것을 크게 책망하였다. 그제야 종자들은 사람들이 부르는 그 노래의 이미를 말하기를 “처를 미생에게 바친 당두唐斗의 일곱 아들은 모두 영달했는데, 딸을 공에게 바친 남보男甫의 세 아들은 모두가 천한 까닭에 이 노래가 있습니다” 라고 했다. 용춘은 종자들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잘못 크다고 한동안 자책하다가 남보의 장남 학열을 승부乘府에 천거하여 오지烏知(17관등 중 13등급은 사지舍知, 15등급은 대오大烏 또는 大烏知, 16등급은 小烏 또는 小烏知인데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다. 다만 15등급이나 16등급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의 관직을 받게 하였다.
또한 김용춘은 603년 풍월주의 위를 김호림에게 물려주면서 나머지 두 아들도 부탁하였다. 14세 풍월주가 된 호림은 세 아들 모두 나중에 낭두로 등용하였다. 풍월주의 자리를 김호림에게 물려준 용춘은 9세 풍월주를 지낸 비보랑과 함께 진평왕이 친정하는 ‘漢水의 전쟁’ 에 출정하였다. 그때 대남보도 함께 출정하였다. 한수의 전쟁은 북한산성 전투인데 현재의 서울의 북부 북한산성이 아니고 광진구의 아차산성이다. 
603년 8월 고구려 영양왕이 고승高勝을 보내 북한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진평왕은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출정하여 방어에 성공하였다. 이후에도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당시에 형성된 국경선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대남보에게는 대나마(10등급)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받지 않았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이름을 ‘단旦’ 으로 개명하였기에 아단성의 ‘단’ 은 자형이 비슷한 ‘차且’ 로 피휘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존하는 아차산성은 1973년 사적 제234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진평왕에게는 왕위를 이을 적자가 없었다. 다만 딸만 둘(또는 셋, 넷 – 삼국사기에는 천명과 선덕의 기록이, 삼국유사에는 선화가 더해 있고, 화랑세기에는 천화도 등장한다) 이 있었다. 신라에서도 싯다르타 가우타마가 태어나길 염원하는 뜻에서 왕실에서는 동륜태자의 장남의 이름을 백정(슈도다나)으로, 차남과 삼남의 이름은 국반과 백반, 즉 부처의 아버지와 숙부들의 이름과 동일하게 하고, 진평왕(백정)의 왕후 복힐구도 석가모니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마야왕후로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신라에서는 석가가 태어나지 않았고, 진평왕과 마야왕후는 딸만 낳았다. 그래서 진평왕은 폐위된 숙부 진지왕의 장남 용수를 사위로 삼아(천명의 남편) 왕위를 이으려고 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용수와 용춘이 동일 인물로 등장하는데, 화랑세기에는 형제, 곧 용수가 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다만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여 그 내용을 풀어 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녀 선덕이 용봉의 자태와 태양의 위용이 있었다. 이에 진평왕은 천명에게 그 지위를 양보하도록 권했고, 효심이 깊었던 천명은 그 지위를 양보하고 출궁을 했다. 선덕은 용춘이 능히 자신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사신私臣이 되도록 청했고, 진평왕도 공주의 뜻을 받들도록 명하였다. 용춘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선덕을 섬겼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물러날 것을 청했다. 그러자 진평왕은 용수에게 그 임무를 다하도록 하였다. 용수도 자식을 낳지 못했다. 당시는 이미 마야왕후는 사망하였고 승만왕후가 아들을 낳긴하였지만 유아사망하였다. 승만왕후는 용수와 용춘 형제가 자신이 낳을 아들을 대신하여 차기 왕위를 차지할 것 같아서 그들을 시기질투하고 미워하였다. 그 와중에서 용수는 사망하였고, 죽기전에 용수는 부인 천명과 아들(김춘추)을 동생인 용춘에게 맡겼다. 용춘은 승만왕후를 피해 변방으로 나가서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결국 승만왕후는 아들을 낳지 못했고, 차기 왕은 최초의 여왕인 선덕이 632년 제27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선덕여왕은 즉위 후 용춘을 지아비로 삼았는데, 여전히 자식이 없어서 용춘은 물러날 것을 청했다. 그래서 여러 신료들이 ‘삼서의 제’를 의논하여 흠반공欽飯公과 을제공乙祭公을 지아비로 삼았지만 여전히 후사를 얻지 못했다. 용춘은 아버지 진지왕이 색에 빠져 폐위된 것을 너무나도 슬퍼했고, 자신 또한 색으로 왕에게 아첨하기가 싫어서 물러나와 형의 부인 천명을 처로 삼고 조카 김춘추를 아들로 삼아, 만년에는 산궁에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서 안락하게 여생을 살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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