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32) |
?????? 2024-06-10, 11:34:49 |
591년 김보리는 12세 풍월주에 오르면서 김서현을 부제로 삼았다. 서현의 부모는 김무력과 아양공주이다. 김무력은 가야에서 항복하여 신라 귀족이 된 구형왕의 아들이고, 아양공주의 부모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이다. 김서현은 자라면서 영특하고 기풍이 통달하였다. 그래서 외조모인 태상태후(사도왕후)가 무척 귀여워하였다. 사도는 서현도 하종의 문하에 속하게 하였고, 그는 전방화랑이 되었다. 585년, 미실의 동생 미생이 10세 풍월주에 올랐을 때는 보리와 함께 우방화랑이 되었다. 588년 미실의 장남 하종이 11세 풍월주에 오르면서 보리를 부제로 삼고, 서현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그리고 591년, 보리가 12세 풍월주가 되었을 때는 서현을 부제로 삼고 김용춘(제25대 진지왕 김사륜의 아들이며 제29대 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이다)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591년 화랑도의 부제가 된 김서현은 몇 년 후 풍월주가 될 수도 있었는데 만명萬明과 사통하는 사건으로 인하여 그 자리를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만명의 어머니 만호는 아양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만명과 서현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화랑도의 부제로 있던 서현의 자리를 김용춘으로 대신하도록 풍월주 보리에게 명하여 시행하였다.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현과 만명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마침내 몰래 서로 도망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만호는 딸 만명을 가두고 서현을 만노萬弩(충청북도 진천군)로 내치려 했다. 만명은 탈출하여 서현과 함께 도망쳤다. 만호태후는 더욱 노하여 그들을 벌주려고 하였지만, 풍월주 보리와 장녀 만룡(아버지는 정숙태자)의 정성으로 만호의 노여움을 풀었고, 그들은 무사하게 되었다. 만명은 태수로 명받아 임지로 떠나는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으로 갔다. 그리고 어느날 밤에 황금 갑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구름을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곧바로 임신해 20개월여 만에 아들을 낳았다. 그가 장성하여 삼한의 영웅이 된 김유신이다. 그는 태양과 같은 위용(천일지표天日之表)을 가지고 성장하였고, 이 손주을 보고 싶어하는 만호태후는 그들(서현과 만명)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김유신의 부모가 월성을 도망쳐서 멀리가 김유신을 출산하였듯, 보리의 부모 이화랑과 숙명공주도 왕궁을 버리고 출궁하여 원광과 보리를 낳았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3세 풍월주 모랑이 지소태후(진흥왕의 모후)의 사신으로 그녀를 섬기며 사랑을 받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지소는 이화랑을 불러들여 사신으로 삼았다. 당시 숙명은 왕후(진흥왕의 후) 였지만 - 어머니 지소의 강권으로 이부동복의 오빠인 진흥왕과 맺어졌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 이화랑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 골품을 초개처럼 버리고 동혈同穴(부부가 죽은 뒤에 같은 구덩이에 묻힌다는 뜻으로, 부부 사이가 극히 좋은 것을 의미한다) 의 벗이 되기로 약속하고 왕궁을 월담하여 멀리 달아나 살았다. 왕과 지소태후는 진노하였고 많은 사람들도 그들을 비난하였다. 사도왕후와 미실의 위안과 중재로 무거운 형벌 앞에서 목숨이 털끝과 같았던 그들은 가까스로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식지 않았고, 마치 랑狼과 패狽가 서로 의지하는 것같이 서로 부둥켜 안고 두려움을 극복하였고, 결국 그들은 신국 신라의 대성인大聖人 원광대법사를 낳았다. 보리는 그들의 차자이다. 원광과 보리의 출생을 화랑세기에는 ‘진실로 하늘의 뜻이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리는 596년(진평왕18년)에 풍월주의 위位를 부제였던 김용춘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상선(전임 풍월주)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심신은 불교에 바쳐 형 원광을 보좌하였다. 보리의 정처 만룡부인과 첩 후단 모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어 남편의 뜻을 받들며 원광의 뒤를 따랐다. 만룡은 늘 같은 날 성불成佛484) 할 것을 기도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 보리는 정처는 만룡(부모는 정숙태자와 만호부인이다)과 아들 예원과 딸 보룡을 낳았다. 예원은 20세 풍월주가 되었고,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조부이다. 보리의 딸 보룡은 21세 풍월주 김선품의 부인이 되어 장녀 자의를 낳았는데, 자의가 제30대 문무왕 김법민의 왕후가 되었다. 보리의 첩 후단(부모는 7세 풍월주 설화랑과 그의 첩 후만이다. 후만의 부모는 비대전군과 그의 첩이다) 은 아들 보태, 보호와 딸 보단과 이단을 낳았다. 후일 보단은 김흠순(19세 풍월주이며, 김유신의 동생이다) 의 부인이 되어 아들 일곱을 낳았다. 동생 이단도 흠순의 첩이 되어 딸 셋과 아들 둘을 두었다. 화랑도의 우두머리 자리를 내려놓고 승려의 길을 택한 보리의 뒤를 이어 13세 풍월주의 위에 오른 김용춘은 제25대 진지왕 김금륜의 아들이다. 당시 미실은 약 50세 가량 되었다. 진평왕이 12세의 나이로 즉위할 때는 보명궁주와 함께 좌우후로 왕에게 색도를 하였지만, 이미 진평왕도 서른의 나이에 가까와 졌고, 왕은 젊은 후궁들만 찾고 있었으니 미실의 ‘책무’가 끝난지도 오래되었다. 484) 성불成佛은 깨달아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작불作佛, 성도成道, 득도得道라고도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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