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음악회를 볼 수 있는 보스턴 삶이 감사했다”
<연주 후기>뜨거운 음악과 흐르는 세월, 감동과 행복의 피아노 음악회
보스톤코리아  2023-10-05, 15:43:46 
9월 30일 한미예술협회가 주최한 3세대 피아노 음악회에서 NEC 백혜선 교수와 손민수 교수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 보스톤한미예술협회 전상수리(Sangsuri Chun))
9월 30일 한미예술협회가 주최한 3세대 피아노 음악회에서 NEC 백혜선 교수와 손민수 교수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 보스톤한미예술협회 전상수리(Sangsuri Chun))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우상원 객원기자 = 지난 9월 30일(토) 저녁, 뉴잉글랜드음악원(NEC)의 조던 홀에서 ‘보스톤의 가을 선물’ 같은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3 세대에 거친 6인의 한인 피아니스트가 두 명씩 짝을 지어 투 피아노 또는 포 핸즈 곡을 연주하는 였다.

첫 번째 세대에 속하는 연주자는 1970년대부터 각각 보스턴음악원(at Berklee)과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김정자 교수와 변화경 교수다. 두 번째 세대에 속하는 연주자는 변 교수와 그의 남편인 러셀 셔먼 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 한국과 국제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다가 모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NEC의 백혜선 교수와 손민수 교수다. 그리고 현재 역시 NEC에서 각각 박사 과정과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에 재학 중이면서 실력 있는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음악가 변은선(Hannah Byun)과 신창용이 세 번째 세대로 참여하였다.

음악회 시작 약 1시간 전부터 공연장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곧 입장을 위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공연 30분 전에 연주장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1층부터 객석을 메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들로부터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중·장년과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의 연령 층도 다양했다. 연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600여명이 자리한 객석이 기분 좋은 기대감으로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첫곡은 신창용씨와 백혜선 교수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 381였다. 그동안 투 피아노 연주를 많이 들어보지 않아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음향이었는데, 내 귀를 적응시키기에 아주 적절한 곡이었다. 맑고 아름다운 소리와 깔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고 두 명의 연주자가 두 대의 피아노로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서로를 충분히 배려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파트를 탄탄하게 끌고 가는 자신감이 적절하게 교차함을 들을 수 있었다. 

두번째 곡은 변은선씨와 손민수 교수가 연주한 드뷔시의 라는 포 핸즈 곡이었다. 첫 곡과 달리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연주를 하니 피아노 음색이 더욱 통일되게 들렸다. 부드러운 멜로디로 시작되는 곡을 함께 물결을 타듯 호흡을 맞추어 연주하니 그 아름다움이 귀로도 눈으로도 느껴졌다. 악보를 한 장씩 넘기는 움직임 마저도 우아했고, 음악의 일부임을 느꼈다.

세번째 곡은 미국 작곡가인 아론 코플란드가 멕시코 여행에서 받은 영감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교향시 <엘 살롱 멕시코>를 레너드 번스타인이 투 피아노로 연주하도록 편곡한 작품이었다. 김정자 교수는 이 날 연주자들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팔을 드러낸 검은 연주복과 폭이 넓은 빨간 벨트, 흐트러지지 않은 곧은 자세와 백발이 단번에 눈길을 끌었다. 평생을 피아노에 바쳐온 노교수의 팔에서는 강렬한 톤이 뿜어져 나왔고 온몸으로 리듬을 느끼며 건반을 치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감동과 존경의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연주한 백혜선 교수는 특유의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며 함께 호흡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 나갔다.

변은선씨와 손민수 교수 (사진 = 보스톤한미예술협회 전상수리(Sangsuri Chun)) 

큰 박수와 환호 속에 1부가 끝나고 잠시의 휴식 후 2부가 시작되었다. 슈베르트 작곡의 <헝가리풍의 디베르티멘토, Op. 54>를 손민수 교수와 변화경 교수가 연주할 차례였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에 보스턴 한미예술협회의 김병국 회장이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공지사항을 전했다. 변화경 교수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늘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객석에서 합창을 하는 듯 아쉬움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대신 백혜선 교수가 연주를 맡았다고 했다. 안 그래도 다섯 곡 중에 세 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던 백 교수였는데, 한 곡이 더 추가되었다. ‘오늘 음악회는 정말 그녀가 아니었으면 진행이 될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어 손민수 교수와 백혜선 교수가 무대에 오르고 슈베르트 곡이 시작되었다. 포 핸즈 곡이라서 나란히 두 사람이 앉아 있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의 음악이 너무나 안정감 있고 깊이 있게 진행되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듣는 이들이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음악, 저절로 몰입을 하게 되는 음악이 관객들을 어디론가 데려갔다. 시간도 공간도 모두 사라지고 음악에 빠지는 마법의 순간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다른 두 분임을 너무나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스승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인지, 이 날은 이 분들에게 동일한 음악적 피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객석의 반응도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곡은 라벨의 <라 발스>.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여진 원곡을 라벨이 투 피아노로 편곡하고 스스로 초연까지 했던 곡이다. 비엔나 왈츠와 요한 슈트라우스를 기억하며 만든 이 곡은 다양한 색채와 끊임없이 이어질 듯한 뱅뱅 도는 움직임, 강렬한 불협화음 등이 특징이다. 계속 고조되는 에너지와 흥겨운 3박자의 움직임 속에 백 교수와 손 교수의 움직임과 터치도 더욱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상승되어 나갔다. 마지막 음이 울려 퍼진 후 모두의 호흡이 정지된 것만 같은 몇 초가 지나고 관객들은 모두 기립하여 환호하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박수를 보냈다.

연주후 환호에 답례 인사를 하고 있는 연주자들 (사진 = 보스톤한미예술협회 전상수리(Sangsuri Chun)) 

계속 이어지는 박수 속에 모든 연주자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하고 앙코르 곡으로 드보르작의 <슬라빅 댄스, Op. 72-2>와 라흐마니노프의 <식스 핸즈를 위한 로망스>를 연주해 주었다. 드보르작은 김정자 교수를 제외한 네 명이 한 피아노에 두 명씩 앉아 연주했고, 라흐마니노프는 김교수가 합류하여 한 피아노에는 세 명이, 또 다른 피아노에는 두 명이 앉아서 연주했다. 피아노 의자를 이리저리 붙여 앉을 자리를 만드는 모습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함께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간이 보였다. 1960년에 줄리어드 예비학교와 뉴욕 퍼포밍 아츠 고등학교로 유학을 와서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한국인 학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던 소녀, 김정자 교수는 지난 해 보스턴 컨서바토리에서 교수 재직 50주년을 맞이했다.

1994년에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최초의 한국 여성, 곧 서울대학교의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어 안정된 자리에 있었던 백혜선 교수. 10 년 후 과감하게 그 자리를 떠나 중년의 나이에 다시 미국에서 연주자로서 도전을 했고, 다시 한 번 도약하여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언제나 따뜻하고 품이 넓은 그녀의 음악은 오늘도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어루만졌다.  

내가 2000년대 초반쯤 보스턴에서 젊은 유망주로 처음 연주를 접했던 손민수 교수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시간을 거쳐 이제 탁월한 중견 연주자이자 스승이 되었다. 그동안 몸 담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떠나 이번 가을부터 NEC 교수로 스승들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그 동안 더욱 깊어진 그의 음악을 잠시나마 이 날 연주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젊은 연주자인 변은선과 신창용은 앞날이 기대되는 매력적인 연주자들이었다. 자신만의 컬러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앞으로 그들이 펼쳐갈 음악과 행보가 기대되었다. 독주회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꼭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30일 피아노 음악회 후 연주자들, 보스톤한미예술협회 관계자들, 그리고 김재휘 총영사 내외가 함께 했다 (사진 = 보스톤한미예술협회 전상수리(Sangsuri Chun)) 

연주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고 행복해 보였다. 나에게는 이런 음악회를 볼 수 있는 보스턴에서의 삶이 새삼 감사한 시간이었다. 또한 이 분들이 음악을 자신의 길로 선택해 준 것과, 힘든 그 길을 계속 걸어가며 우리에게 음악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 그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학생은 교수가 되었고, 젊은 교수는 중년의 원숙한 연주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50년을 가르치고 연주하며 백발이 된 피아니스트의 열정은 아직도 뜨거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피어나는 젊은이들이 있다. 객석의 관객들도 각각 그 세월을 보내며 함께 흐르는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연주 후 하루가 지났다. 변화경 교수의 남편이자 ‘건반 위의 철학자’라 불리던 러셀 셔먼 교수께서 연주가 있던 토요일에 93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 인생을 가르쳤던 아름다운 한 영혼이 이 땅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셨다. 셔먼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변화경 교수께 애도의 마음과 위로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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