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15) |
보스톤코리아 2023-04-06, 17:03:36 |
화랑도의 풍월주 제도를 폐지한 자의태후(신문왕의 모후)에게는 남동생도 한 명 있었다. 그가 김순원金順元인데, 698년(효소왕7년)에 시중에 올랐으나, 699년 ‘경영慶永의 난’ 연루되어 파면당했다. 하지만 곧 정계로 복귀하여 장녀를 성덕왕의 왕후로 들여보냈고, 739년에는 차녀를 효성왕의 왕후로 맺어서 성덕, 효성 두 왕의 장인이자, 효성왕의 외조부가 되었다.437) 또한 그에게는 아들 정종이 있었다. 김정종은 효성왕 즉위년인 737년에 상대등에 올랐다. 후임 상대등 김사인이 745년에 상대등이 되었는데, 그 때까지 8년간 그 위位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후로 들어간 두 누이들 덕분에 막강한 세력을 누린 것으로 보인다. 정종은 713년(성덕왕12년) 2월 김사공, 김사인, 윤충 등과 함께 견당사遣唐使로 당나라에 갔다.438) 그들을 영접하려고 황제가 직접 누문까지 나왔으며, 그들이 동년 10월에 성덕왕의 책봉 조서를 들고 돌아올 때까지 당나라 현종玄宗으로 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장군 임명과 상대등에 오른 기록 등 741년까지의 행적이 다소 삼국사기에 전한다. 한편 ‘흠돌의 난’ 을 진압한 신문왕은 교서를 내려 백성들을 진정시켰고, 자의태후는 김오기에게 명하여 모든 화랑도들의 ‘낭도명부’ 를 작성하여 병부兵部에 속하게 한 후 각자의 계급과 직분을 부여하였다. 즉 화랑도의 수장인 풍월주 제도를 없애고 모든 화랑도의 조직을 군사조직으로 편제를 변경하였다. 그러나 태후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재편성은 왕경에서만 이행되었고 지방에 있었던 화랑도들은 일부가 따르기는 하였지만, 거의가 자체적으로 전과 동일한 낭정郎政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실직주悉直州는 거의 명령이 하달되지 않았다. 실직주는 신라의 지방행정 단위로 등장하는 최초의 주이다. 505년(지증왕6년)에 전국의 주군현州郡縣을 정할 때 주州로는 실직주를 가장 먼저 설치하고 이사부를 군주軍主로 파견하였다. 주의 장관을 군사적 수장인 군주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실직주는 일정한 영역을 관할하는 지방행정구역이 아니라 해당 방면의 영토를 방어하고 확장하는 군사적 전진기지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실직주가 설치되었던 현재의 강원도 삼척은 경상북도 울진(1962년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지역까지를 포함했던 소국의 하나로 실직국 또는 실직곡국悉直谷國이라 불렀다. 실직국은 음즙벌국音汁伐國과의 영토 분쟁을 계기로 102년(파사왕23년) 신라에 복속되었다. 실직은 내물왕과 눌지왕 재위 기간에도 등장한다. 그 후 556년(진흥왕 17년) 신라의 국경이 현재의 함경남도 안변까지 확장되었고, 그곳에 비열홀주比烈忽州가 설치되면서 실직주는 실직군이 되었다. 그리고 757년(경덕왕16년)에 이웃에 있는 하슬라주와 합쳐서 명주溟州(강원도 강릉)가 되었다. 문무왕이 사망하고(681년 7월21일), 장례도 치르기 전에 ‘흠돌의 난’ 이 일어났다. 태후가 된 자의는 김오기와 진복의 도움으로 반란을 며칠내에 진압하고 나라를 평정시켰다. 하지만 자의태후도 난을 진압하는 등 격무에 시달린 탓인지, 남편 문무왕이 떠나고 난 뒤 곧 이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681년). 김흠돌의 난에 많은 상선(전임 풍월주)들과 화랑도들이 가담하였다고 화랑도를 폐지하였지만, 자의태후가 사망한 때문인지 화랑은 다시 풍월주 대신 국선의 휘하에서 조직을 굳건히 키우고 있었다. 437) 제34대 효성왕의 왕후 혜명의 아버지가 삼국사기에서는 이찬 김순원으로, 삼국유사에는 각간 진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효성왕에게는 739년 출궁당한 첫 부인 황후 박씨가 있었다. 아마도 첫 왕후의 아버지가 진종일 개연성이 크다(사서에서 진眞과 정貞을 혼용했기에, 순원의 아들 정종이 진종으로 기록되어 순원의 차녀가 아닌 손녀가 효성왕의 왕후일 수도 있다). 또한 효성왕은 총애하는 후궁 박씨도 있었다. 그런데 왕후 일당이 이를 시기하여 후궁 박씨를 모살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후궁의 아버지 박영종朴永宗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740년8월에 일어난 ‘영종의 난’ 이다. 물론 난은 즉각 진압되었고, 영종 일당은 주살되었다. 438) 김사공金思恭은 718년 전임자 효정孝貞을 이어 중시를 역임하였다. 728년에는 역시 전임자 상대등 배부裵賦가 나이가 많다며 물러나자, 김사공을 이찬(2등급)으로 관등을 올리고 상대등에 임명하였다. 그외의 기록은 김진종과 비슷하다. 732년에 장군에 임명되었고, 713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김사인金思仁 역시 상대등을 역임하였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732년 김정종, 김사공, 윤충 등과 함께 장군에 임명되었고, 745년 김정종을 이어 상대등에 올랐다. 김윤충은 김유신의 손자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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