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7) |
보스톤코리아 2023-02-13, 11:32:28 |
681년,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부인 문명태후가 사망하였다. 그러자 이모인 그녀를 믿고 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김흠돌이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인명전군仁明殿君을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으로 역모를 일으켰다. 이에 앞서 문무왕 김법민의 병세가 위중해졌다. 그러자 자의왕후는 북원경北原京에 있던 김오기를 왕경王京으로 불러 호성장군에 임명하고 왕궁과 왕족을 호위하게 하였다. 그 내용을 화랑세기에서 인용하면, [문명태후가 죽자, 흠돌 등이 스스로 그 죄가 무거운 것을 알고 두렵고 불안했다. 게다가 흠돌의 딸이 총애를 잃었다. 흠돌 등이 이에 모반을 꾀했다. 야명궁夜明宮을 핑계로 삼아 인명仁明을 옹립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이다. 문무제의 병이 크게 악화되자 아버지 오기공吳起公이 북원北原으로 부터 들어와 호성장군護城將軍이 되었는데, 실제로는 자의황후慈儀皇后의 명령에서 나온 것이다. 그 때 진공眞功이 호성장군으로 인부印符를 내어주지 않으며 말하기를 “주상主上이 병으로 누웠고 상대등이 문서를 내리지 않았는데 어찌 중요한 직職을 가벼이 넘겨주겠는가?” 하면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대개 적賊들의 모의가 이미 치밀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먼저 알면, 당시 역모 직전의 긴박한 상황을 유추하는데 도움이 된다. 문명태후는 김서현의 딸로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이다. 김춘추와 혼인하여 654년 왕후가 되었다. 661년 태종무열왕이 사망하자 그들의 아들 법민이 문무왕으로 즉위하였고, 그녀는 태후로 20년을 더 살고 681년에 사망하였다. 김서현에게는 문희 외에도 보희와 정희(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정희의 기록이 없다) 두 딸이 더 있었다. 보희는 ‘왕비가 될 꿈’ 을 동생 문희에게 팔면서 왕비가 될 꿈은 꿈이 되었지만 나중에 무열왕의 후궁(영창부인)이 되었다. 정희는 내물왕의 7세손 잡찬(3등급) 김달복과 혼인하여 2남(흠운과 흠돌) 1녀(흠신)를 두었다. 김법민은 제30대 문무왕으로 661년에 즉위하였고, 왕후는 자의慈儀이다. 자의의 부모는 21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선품과 보룡이다. 선품은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병을 얻어 돌아와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청상과부가 된 보룡은 네 자녀들을 데리고 김춘추의 집에 유모로 들어갔다. 그 때 데리고 간 자녀들이 장녀 자의, 차녀 운명, 삼녀 야명과 아들 순원이다(삼국유사에는 순원의 동생 작진酌珍425) 이 등장한다). 자의는 김춘추의 아들 법민과 혼인하여 661년 왕후가 되었고, 그들은 두 아들 소명과 정명을 두었다. 소명태자는 665년 조졸하였고, 정명은 681년 신문왕으로 즉위하였다. 운명은 28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오기와 혼인하여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을 낳았다. 야명은 문무왕의 후궁이 되어 인명전군을 낳았다. 681년 김흠돌이 바로 이 야명의 아들 김인명을 왕으로 옹립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아들 김순원은 698년 시중에 올랐다가 곧 ‘경영의 난’ 에 연좌되어 파면 당했으나 후일 중앙정계로 복귀하였다. 딸이 성덕왕의 왕후(점물왕후)가 되어 아들들을 낳으니 그들이 제34대 효성왕과 제35대 경덕왕이다. 또한 순원의 아들 김진종이 딸을 낳아 효성왕의 왕후가 되었다. 당시 신문왕의 왕후 김씨는 김흠돌의 딸인데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신문왕은 태자일 때 어머니 자의와 함께 형수가 될뻔한 소명궁426) 을 자주 찾아 위로하다가 정이 들었고, 결국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흠돌의 난이 일어나면서 왕후를 폐하고 소명궁 김씨를 왕후로 맞았다. 그녀가 신목왕후이며 장남 김이공(김이홍)이 제32대 효소왕이고 차남 김융기가 제33대 성덕왕이다. 425) 삼국유사의 기록을 간추리면 김작진金酌珍이 왕교파리王咬巴里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元善을 낳았는데, 그가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이다. 작진의 아버지는 파진찬 선품공이며, 선품은 구륜의 아들이다, 구륜의 부모는 제24대 진흥왕과 사도왕후이다. 그럼 화랑세기의 기록을 본다. 김선품의 부모는 구륜과 보화공주이다(보화의 부모는 진평왕과 미실이다). 구륜의 부모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이다. 즉 선품의 부모와 조부모 기록은 삼국유사와 동일하다. 그런데 김작진의 기록은 없다. 김선품은 643년에 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죽었다. 작진이 아무리 늦게 태어나도 644년(유복자라 하더라도…) 이전에 출생해야 한다. 작진이 아들 원선(아자개)낳고, 원선이 견훤을 낳았으니, 견훤은 작진의 손자이다. 그런데 견훤이 867년에 태어났으니 조손祖孫의 출생연도가 최소224년의 차이가 난다. 그냥 선대 조상이라면 받아드릴 수 있지만, 작진-> 아자개-> 견훤으로 이어지기엔 불가능하다. 426) 소명궁 김씨는 흠돌의 형(또는 동생) 흠운의 딸로 소명태자와 정혼을 했었는데, 태자가 조졸하는 관계로 ‘혼전과부’ 가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죽은 소명태자의 제주祭主가 되길 청하였고, 자의왕후가 허락하여 소명궁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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