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2) |
보스톤코리아 2023-01-09, 11:50:53 |
26세 풍월주 진공眞功의 아들 신공信功이 678년 29세의 나이로 풍월주에 올랐다. 먼저 그 내용을 화랑세기에서 인용해 보고자 한다. [신공은 기유년 생이고 무인년에 낭郎이 되었다. 그리고 진공의 아들 신공이 대를 이었는데 곧 흠돌의 조카로 또한 흥원의 딸 차홍을 화주로 삼았다. 수년 내에 낭정郎政은 한결같이 삼간三奸의 손으로 들어갔다. 흠돌은 아첨하여 문명태후를 섬겼다. 이에 그의 딸이 유신공의 외손자이므로 태자415) 에게 바쳤다. 태자와 모후母后416) 는 흠돌의 딸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소명태자昭明太子는 무열제의 명으로 흠운의 딸을 아내로 맞기로 약속했으나 (소명태자가) 일찍 죽었다. 흠운의 딸은 소명제주昭明祭主가 되기를 원했다. 자의후慈儀后가 허락했다. 이것이 소명궁昭明宮이다. 태자와 더불어 모후母后가 자주 소명궁으로 거둥했다. 태자가 소명궁을 좋아하여 마침내 이공전군理恭殿君417) 을 낳았다. 후后가 이에 소명궁昭明宮에게 명하여 동궁東宮으로 들어가게 하고 선명궁善明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총애함이 흠돌의 딸보다 컸다. 흠돌의 딸이 투기를 했다.] 짧은 인용문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수라서 그들의 관계가 복잡할 수도 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중심으로 그들의 관계를 정리해 보면, 무열왕은 김유신의 동생 문희(문명왕후/태후)와 결혼하여 문무왕이 되는 김법민을 낳았다. 법민은 태자 시절, 남편 김선품을 일찍 여의고 김춘추의 집안에 유모로 들어온 보룡의 장녀 자의와 결혼하였고, 후일 법민이 문무왕으로 즉위하자 자의는 왕후가 되었다. 문무왕과 자의왕후는 장남 소명태자와 차남 정명태자를 낳았다. 소명은 문무왕 재위 중인 665년에 사망하였다. 소명은 할아버지 김춘추의 명으로 김흠운의 딸과 정혼을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일찍 죽고 말았다. 그래도 흠운의 딸 김씨는 죽은 소명태자의 제사를 모시길 원했고, 시어머니인 자의왕후는 이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자의왕후는 어린 ‘과부 며느리’ 가 적막한 궁(소명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안스러워 정명태자와 함께 자주 찾아 위로하였다. 마침내 정명태자는 형의 정인이었던 김씨를 좋아하였고, 그들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자 정명의 부인이 투기를 하였다. 정명의 부인 김씨는 흠돌의 딸인데, 그는 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흠돌과 흠운은 형제이다. 누가 형이고 아우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부모는 김달복과 정희이다. 정희는 김유신의 동생이다. 곧 소명의 정인 김씨와 정명의 부인 김씨는 사촌간이다. 정명과 흠운의 딸 김씨(신목왕후)가 낳은 아들이 이공전군인데, 그가 후일 692년 왕위에 오르니 제32대 효소왕이다(삼국사기에는 이공전군이 태어난 시기가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681년 ‘흠돌의 난’ 이 일어난 후 삼간三奸, 즉 흠돌과 진공과 흥원 등 역모의 수괴들을 처단하고, 흠돌의 딸인 왕후 김씨도 폐비한 후에 흠운의 딸<소명태자의 정인> 을 왕후로 맞아 687년에 아들 이홍理洪<후에 이공理恭으로 개명>을 낳았다. 그리고 이공理恭은 691년 태자로 책봉되었고 692년 5세의 어린 나이에 효소왕으로 즉위하였다. 효소왕은 15세인 702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모후인 신목왕후가 섭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의 부모인 김서현과 만명부인은 장남 유신을 비롯하여 차남 흠순과 보희, 문희, 정희 등 딸 셋을 두었다. 문희는 무열왕의 왕후(문명왕후)이고, 보희는 무열왕의 후궁(영창부인)이 되어 아들 여러명과 딸 요석공주를 낳았다. 요석공주가 김흠운과 결혼하여 낳은 둘째 딸이 신문왕의 왕비(신목왕후)이다. 김흠운은 655년 조천성 전투에서 백제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그리고 요석공주는 정확한 시기(655년 ~ 660년 사이) 는 알 수 없으나 원효대사의 부인이 되어 설총을 낳았다. 415) 제30대 문무왕의 차자로 태어나서 형 소명이 일찍 죽자 태자가 되었다가 681년 제31대 신문왕이 되었다. 416) 신문왕의 어머니 자의왕후이다. 자의의 부모는 21세 풍월주 김선품과 보룡이다. 자의의 동생 운명은 김오기에게 출가하여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을 낳았다. 또 다른 동생 야명은 문무왕의 후궁이 되어 인명전군을 낳았다. 남동생 순원은 성덕왕과 효성왕의 장인이 되었다. 417) 정명태자의 아들 이공전군은 692년에 제32대 효소왕으로 즉위하였다. 김이홍(이공전군)은 687년에 태어났는데, 신라 왕들 중에서 출생기록이 전하는 몇 안되는 왕이다. 그는 10여년간 재위한 부왕 신문왕의 뒤를 이어 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정확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록의 정황상 모후 신목왕후가 섭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0년 재위에 있다가 15세의 나이로 702년에 사망하였는데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차기 왕위는 동생인 김융기가 성덕왕으로 즉위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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