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9세 풍월주風月主 원선공元宣公 |
보스톤코리아 2022-12-05, 11:46:40 |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29세 풍월주 김원선의 기록은 매우 짧다. 단 두 문장만이 전한다. 다음과 같다. [원선元宣은 병신년丙申年 생이고 갑자년甲子年에 화랑이 되었다. 원선공 또한 4년간 재위하고 역시 군관공軍官公의 적자인 천관天官에게 물려주었다.] 원선이 출생한 병신년은 636년이고, 그가 화랑의 수장이 된 갑자년은 664년이다. 그러니 그는 28세에 풍월주가 되었다. 위의 기록으로 보아서는 그가 누구인지 거의 알 수가 없다. 또한 원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아주 짧게나마 등장한다. 삼국사기(권8, 신라본기, 효소왕)에 보면 “원년(692년) 8월에 대아찬 원선元宣을 중시로 삼았다.” 라는 기록과 효소왕 “4년(695년) 10월에 나이가 많아 중시직에서 사임하였다” 라는 기록이 전부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 기록으로 보면 그는 56세에 중시에 올랐다가 59세에 노환/병환으로 스스로 사임하였다. 그의 전임 중시는 선원仙元이 690년에 취임했고, 그의 후임으로는 당원幢元이 696년 봄에 취임하였다. 당원의 후임으로는 순원順元이 698년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성덕왕 원년(702년)에 원훈元訓이 순원을 이엇다. 중시 선원仙元은 문명왕후(문희, 태종무열왕의 비)의 아들로 화랑세기에 선원전군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무열왕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당원幢元은 보룡의 아들로 아버지가 무열왕 김춘추이다. 당원의 후임으로 중시가 된 순원도 보룡의 아들인데 아버지는 21세 풍월주 김선품이다. 순원을 이어 중시에 오른 원훈은 원선의 이복동생이다. 원선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과 29세 풍월주의 기록으로는 그의 가계마저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 19세 풍월주 흠순공조에 보면 원선의 가계가 등장한다. “(흠순)공의 셋째 아들만이 홀로 (염장공의 딸)을 버리고 유신공의 딸 영광令光을 아내로 맞아 아들인 영윤令胤을 낳았으니 그가 곧 반굴공이다. 부자가 마침내 전쟁에서 죽었으니, 아름다운 이름이 백세에 남을 것이다. 넷째 아들 원수元帥,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은 모두 중시가 되었는데 보단의 소생이다. 아홉째 아들 원훈元訓 또한 중시였는데 곧 이단의 소생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흠순은 12세 풍월주 보리공의 사위가 되었다. 사위 흠순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흡족하여 보리는 서녀 이단도 흠순에게 주었다. 흠순은 두 아내로 부터 아들 아홉을 낳았다. 셋째 아들 반굴만이 사촌인 영광을 아내로 맞았지만, 나머지 여덟 아들은 모두 김염장(17세 풍월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흠순의 정처 보단은 염장의 딸들이 아버지를 닮아 행실이 좋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흠순의 설득과 무마로 그의 나머지 아들 8명 모두 김염장의 사위가 되었고, 염장의 딸들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흠순의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흠순의 넷째 아들 원수는 신문왕8년인 688년에 중시에 올랐다가 병으로 그만 두게 되었고 차기는 선원仙元에게로 이어졌다. 그리고 원수는 화랑세기에는 원수元帥로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원사元師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화랑세기를 참고했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보여진다. 원선은 삼국사기의 중시 벼슬 기록만으로는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화랑세기의 기록을 보면 그는 신라 3보三寶의 한명인 김흠순의 여섯째 아들이다. 19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이다. 흠순의 부모는 김서현과 만명부인이다. 서현의 부모는 김무력과 아양공주이다. 무력의 부친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이다. 흠순의 어머니 만명의 부모는 김숙흘종과 만호태후이다. 흠순의 조모 아양공주의 부모는 제24대 진흥왕과 사도왕후이다. 김흠순은 18세에 전방화랑이 되어 여러 상선들에게 ‘진급 인사차’ 12세 풍월주를 지낸 김보리의 집도 찾았다. 정자위에서 보리를 배알하고 내려다 보니 연못가에 선녀같은 여인이 동생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반한 흠순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며칠 후 용기를 내어 다시 찾아와 보리에게 사위가 될 것을 청했다. 이에 보리는 첩을 많이 거느리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딸 보단을 흠순과 혼인시켰다. 그리고 흠순의 아내 사랑에 흡족하여 서녀 이단도 후처로 주었다. 흠순은 보단과 함께 아들 일곱을 낳았다. 셋째가 반굴이고, 넷째가 원수이며 여섯째가 원선이다. 반굴은 660년 황산벌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원수와 원선은 중시를 역임하였다. 나머지 아들 넷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후처 이단은 흠순과 함께 딸 셋과 아들 둘을 낳았다. 아홉째이자 막내인 원훈도 중시를 역임하였다. 신라의 56왕 중 조상이 가장 미스터리한 왕이 제37대 선덕왕 김양상이다. 삼국사기의 기록만으로는 그가 내물왕의 10세손인데, 물론 정확하지가 않다. 같은 삼국사기에 보면 김양상金良相의 아버지는 효방孝芳이고, 삼국유사에는 효방이 각간 원훈의 아들로 등장한다. 화랑세기와 교차 검증하면 선덕왕 김양상은 내물왕의 후손이 아니라 가야 구형왕의 후손이다! 이로 보아, 제38대 원성왕 김경신이 즉위와 동시에, 개성대왕(추존왕, 김양상의 아버지)과 성덕왕(김양상의 외할아버지)의 사당을 헐어버리고 태종무열왕계 사당으로 대체한 커다란 의문도 풀려지게 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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