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7세 풍월주風月主 흠돌欽突(4) |
보스톤코리아 2022-11-14, 11:34:55 |
김흠돌이 풍월주에 오르면서 김흥원金興元을 부제로 임명하였다. 통례적으로 부제가 차기 풍월주가 되었는데, 흥원은 무슨 연유인지 28세 풍월주가 되지 못했다(흥원은 656 ~ 662년까지 흠돌의 부제로 화랑도를 이끌었다). 흥원은 후일 681년 김흠돌과 함께 역모(김흠돌의 난)을 일으켜 삼간三奸(흠돌, 흥원, 진공 세 명을 일컫는다)의 한 명으로 처형되기 전까지 늘 조정과 강등된 자신의 골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살았다. 제24대 진흥왕은 사도왕후와의 사이에서 3남4녀를 낳았다. 장남은 동륜태자이고, 차남은 제25대 진지왕(금륜, 또는 사륜)이며, 삼남은 구륜이다. 그리고 장녀 태양공주, 차녀 아양공주, 삼녀 은륜공주, 사녀 월륜공주가 그들이다. 태양공주는 어려서 부터 오빠인 동륜태자를 섬겼다. 572년에 동륜이 ‘개 사건’ 으로 졸지에 죽자, 금륜이 태자에 책봉되었다. 그리고 태양은 금륜태자를 섬겼으며, 금륜은 576년 왕위에 올라 진지왕이 되었다. 태양공주는 진지왕이 579년 폐위될 때까지 섬겼다(진지왕은 폐위된 후 곧 죽었다). 차기 왕위는 태양공주의 조카, 즉 동륜의 장남 백정에게로 이어졌으니, 그가 진평왕이다. 그리고 태양공주는 조카인 진평왕을 모시게 되었다. 얼마후 아들 둘을 낳았다. 그들이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이다. 하지만 태양공주는 진평왕에게 헌신적이지 않았는지 늘 곁에 여러명의 사신私臣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두 아들들은 진평왕을 전혀 닮지 않았다. 즉 태원과 호원 두 왕자는 성골임에도 불구하고 석연찮은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 태양공주의 행실이 문제가 되어 “통統을 얻지 못했다” 고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화랑세기의 그 내용과 문맥으로 보아 통이란 제통帝統을 말한다. 제통이란 즉 왕이 될 수 있는 자격과 특권을 말함이다. 첨언하자면 태원과 호원은 성골의 왕자였지만, 어머니 태양공주의 남성편력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골骨’ 을 의심 받았으며, 결국 왕위계승권을 박탈 당하였다. 즉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族降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남자로서는 마지막 성골이었다는 진평왕에게는 성골의 적자가 사라지게 되자, 사위 용수/용춘에게 왕위를 이으려고도 하였지만 결국 딸 덕만공주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다. 그리고 여왕 선덕과 진덕을 끝으로 성골은 남자든 여자든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 진덕여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태종무열왕, 즉 최초의 진골왕 김춘추도 진지왕의 장손이지만, 진지왕이 폐위되어 죽으면서 그의 적자 용수와 용춘도 성골에서 진골로 족강되었기에 김춘추 역시 진골의 신분이 되었다. 화랑세기를 통하여 보면, 성골(대원신통이나 진골정통) 의 골품을 잇기 위하여 남매사이나 사촌간의 혼인과 색공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상대의 숫자에 관계없이 용인되었는데(부모와 가족의 허락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단지 성의 희락을 위한 관계는 행실의 문제로 많은 비난을 받은 기록도 여럿 전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금진낭주410), 태양공주, 은륜공주 등이다. 김흠돌의 부제 흥원이 태양공주의 둘째 아들 호원의 아들이다. 즉 진평왕의 손자인 흥원은 왕위가 선덕과 진덕을 거쳐 폐주廢主의 손자인 김춘추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용납하기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화랑세기에 그 심경이 기록되어 있고, 그가 흠돌과 손을 잡고 역모를 꾸민 연유도 전하는데, 그 내용이 나오는 흠돌조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무열제武烈帝가 죽고 문무제文武帝가 즉위하자, 자의慈儀를 후后로 삼았다. 자의는 흠돌의 악함을 알았으나, 문명태후에게 효도를 했으므로 한마디 말도 발설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흠돌은 호원공好元公의 아들 흥원興元을 부제로 삼았다. 애초에 태양공주太陽公主가 진평대제를 섬겨 태원太元과 호원好元을 낳았는데 帝제를 닮지 않았다. 공주는 어려서 동륜과 금륜 두 태자를 섬겼는데 사신私臣을 좋아 했다. 제帝를 섬길 때도 역시 그러했다. 그러므로 양군兩君(태원과 호원)은 통統을 얻지 못했다. 흥원은 제통帝統이 자기에게 있다고 혼자 생각하여 조정을 원망하고, 누이를 흠돌의 첩으로 삼아 결탁했다.] 위 인용문의 등장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무열제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이고 문무제는 춘추의 장남 김법민으로 제30대 문무왕이다. 문명태후는 무열왕의 왕후 김문희(김유신의 동생)이다. 자의는 문무왕의 왕후인데, 부모는 21세 풍월주 김선품과 보룡이다. 선품은 21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보룡은 12세 풍월주 김보리의 딸이다. 410) 금진낭주는 초대 풍월주 위화랑의 딸이다. 언니 옥진과 함께 법흥왕의 후궁으로 있다가 출궁되었다. 그리고 구리지의 구혼을 받아들여 토함과 5세 풍월주 사다함과 딸 새달을 낳았다. 금진은 남편 구리지가 변방으로 출전할 때는 남편의 용양신 설성과 사통을 하였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기도 했는데, 그가 7세 풍월주 설원랑이다. 구리지가 독산성전투(548년)에서 전사하자 설성을 남편으로 맞았다. 그러나 금진의 색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아들 사다함의 사우死友(죽음도 함께 하자고 맹세한 친구) 무관랑을 침실로 끌어 들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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