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6세 풍월주風月主 진공眞功(7) |
보스톤코리아 2022-10-03, 11:48:51 |
김달복과 김정희(김유신의 동생) 부부 사이에는 흠신이라는 딸이 있었다. 흠신은 보로전군寶路殿君(부모는 진평왕과 보량이다)과 혼인하여 십대의 딸 둘을 두고 있었지만, 풍채가 출중하고 용감한 화랑도의 풍월주 진공眞功을 좋아하여 남의 이목이나 ‘입방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부인이 되려고 했다. 그 내용이 화랑세기에 전한다. [흠신은 또한 진공이 출중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하여 보로를 버리고 진공에게 가려고 했다. 진공은 이에 사람을 시켜 보로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흠신은 병이 있으니 버리고 다시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는 것이 좋다” 했다. 보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곧 유신庾信의 3녀 작광酌光을 맞이하여 처로 삼았다. 진공은 이에 흠신을 처로 삼았고 풍월주가 되자 화주로 삼았다. 논자論者들은 옳지 않게 여겼다. 진공은 개의치 않고 아울러 흠돌을 부제로 삼았다. 흠돌은 마음이 험악하고 간사한 꾀가 많아 사람들이 모두 꺼렸다.] 김달복과 정희 부부에게는 딸 흠신 외에도 아들이 둘 있었다. 그들이 김흠운과 흠돌인데 셋 모두 출생년도의 기록이 없어서 그들의 나이 순서를 알 수 없다. 다만 장남이라고 추측되는 김흠운은 ‘마음이 험악하고 간사한 꾀가 많아 뭇 사람들이 꺼린’ 흠돌과는 다름을 화랑세기에서 볼 수 있다. 흠운은 소년 시절 8세 풍월주가 된 문노의 휘하에 들어가 화랑도가 되었다. 당시 문노는 격검술이 신기에 가까워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다(문헌으로만 보면 문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격검술擊劍術을 보유했다, 다만 백동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 정조 때 등장한 백동수도 신출귀몰했던 무예인으로 검과 창을 다루는 솜씨가 신기에 달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문노 못지않았던 것같다). 흠운은 소년 시절부터 이름을 남기고 죽어간 옛 화랑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였고, 때로는 그들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그들처럼 싸우다가 명예롭게 죽겠다는 다짐을 했다(8세 풍월주 문노조 참조). 흠운은 진골 귀족이었지만 전쟁터에 나가면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풍찬노숙을 하였다. 그는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어머니는 김유신의 동생 보희) 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 두명을 남기고 655년 졸하였다. 655년 백제가 조천성을 공격하자 그는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재직 중 군사들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백제군이 야간에 기습 공격하자 퇴각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김흠운의 전사로 요석공주는 과부가 되었고, 후일 원효대사와 재혼하여 설총을 낳았다. 681년 신문왕 즉위 한달 후, 왕의 장인 김흠돌이 난을 일으켰다가 처형되면서, 왕비 김씨도 폐비가 되었다. 그리고 흠운과 요석공주의 딸이 683년 계비로 책봉되었으니 그가 신목왕후이다. 신목왕후의 장남 김이홍金理洪이 제32대 효소왕이며 차남 김흥광金興光이 제33대 성덕왕이다. 한편 진공은 진덕여왕 말기와 태종무열왕 초기에 풍월주의 위位에 있었는데, 당시 화랑도 조직 내부에는 가야파가 크게 득세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야파의 우두머리인 찰씨 일문이 전행하고 있었다. 그 가문의 좌장인 찰인察忍은 대노두의 지위를 잃었지만, 그의 아들들인 찰두와 찰석과 찰의, 그리고 사위들은 모두 낭두에게 주어지는 고위직을 꿰어차고 낭정을 장악하였다. 화랑세기의 기록을 보면, [그 때 가야파가 크게 성하여 찰씨察氏 일문에서 낭정을 모두 장악했다. 찰의는 도두별장都頭別將인데 대도두로 행세했다. 흠돌은 찰의와 죽음을 같이할 친구가 될 것을 허락했다. 찰의가 보량寶良과 득통하고 진덕제眞德帝를 알현했다. 제帝는 그의 작爵을 올려 주고 총애했다.] 찰의는 22세 풍월주 김양도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폐아嬖兒, 양도는 부인 보량이 이부동복이기에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찰의가 그의 폐아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남색의 냄새를 풍기기는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로 양도의 집을 자주 드나드면서 양도의 부인 보량과도 사통하였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찰인이 대노두의 직에서 물러났지만 모든 낭정은 찰씨 일문이 계속 쥐고 있었다. 심지어 보량과의 관계로 인하여 진덕여왕(제28대왕, 재위기간은 647 ~ 654년이다) 도 만났고 벼슬자리도 올라갔다. 보량의 부모는 보종과 양명공주이고, 보종의 부모는 7세 풍월주 설화랑과 미실이다. 그리고 양명의 부모는 제26대 진평왕과 보명이다. 보량의 언니 보라는 김춘추의 첫 부인이 되어 고타소(김품석의 부인)를 낳고 조졸하였다. 22세 풍월주 김양도가 취임했을 때 낭두郎頭들의 직위는 하급부터 낭두郎頭, 대낭두大郎頭, 낭두별장郎頭別將, 상두上頭, 대두大頭, 도두都頭의 등급이었는데, 양도가 그 위에 대도두大都頭와 대노두大老頭 더했다. 뿐만 아니라 도두 이하는 각기 별장을 두어 결국 그 벼슬길을 넓혔고 그 지위를 높혔다. 이와 같은 등급으로 보아 찰의는 보량의 위세를 업고 실제 직위보다 더 높게 행세했음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조선왕조실록,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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