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6세 풍월주風月主 진공眞功(6) |
보스톤코리아 2022-09-26, 11:49:58 |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만의 기록을 통해서 보면 김유신은 환갑년에 태종무열왕의 딸 지소공주를 아내로 맞이 할 때까지 기혼이었는지, 미혼이었는지, 사별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뿐만아니라 김유신 열전에는 모든 자녀들이 지소가 낳은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아내 지소부인智炤夫人은 태종대왕의 셋째 딸이다. 아들 다섯을 낳으니 맏이는 이찬 삼광三光이고, 다음은 소판 원술元述이며, 다음은 해간海干 원정元貞이고, 다음은 대아찬 장이長耳이며, 다음은 대아찬 원망元望이다. 딸은 넷이다. 서자庶子로 아찬 군승軍勝이 있는데, 그 어머니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뒤에 지소부인은 머리를 깎고 거친 옷을 입고 비구니가 되었다). 거의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를 교차 검증해 보면 장남 삼광과 딸 넷이 지소가 낳은 자녀들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김유신의 첫 부인 영모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랑세기에는 김유신의 장남 삼광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김유신과 영모가 612년 결혼해서 낳은 딸 넷이 여기저기 등장한다. 그들을 한 군데 모아보면, 첫째 딸의 이름은 진광晋光으로 27세 풍월주 김흠돌의 부인이 되었다. 둘째 딸은 신광信光이며 문무왕이 된 김법민이 태자 시절 그의 첩이 되었다. 셋째 딸은 작광作光인데 보로전군寶路殿君의 후처가 되었다. 보로는 진평왕의 아들로 정희(김유신의 동생)의 딸 흠신을 첫 부인으로 맞이하였는데, 흠신은 두 딸을 낳은 뒤 풍월주 진공을 사모하게 되었다. 이를 감지한 진공은 흠신이 병이 있다고 소문을 내어 그들을 이혼하게 하였고, 결국 흠신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넷째 딸은 영광令光인데 김흠순(김유신의 동생)의 셋째 아들인 반굴盤屈과 결혼하여 영윤令胤을 낳았다. 삼국사기나 다른 사서에는 영윤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화랑세기에는 김유신의 넷째 딸 영광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김유신의 장남 삼광이 지소의 아들이 아니고 첫 부인 영모의 아들임을 고증해 보고자 한다. 삼국사기에, “천존天存의 아들 한림漢林과 유신庾信의 아들 삼광三光은 모두 나마奈麻의 관등으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권6, 신라본기, 문무왕6년 여름4월). 문무왕6년은 서기 666년이다. 김유신과 지소는 655년12월에 결혼하였다(삼국사기). 삼광이 그들의 아들이라면 656~7년생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나마는 당시 신라 17관등 중 11등급이었다. 즉, 10살 정도의 소년이 나마로 당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숙위했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했을까? 참고로 김천존(? ~ 679¬)은 김유신과 함께 백제 도살성을 공격하였고(649년, 진덕여왕3년), 또한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을 격파하는데도 참전하였다. 문무왕 19년(679년)에는 중시의 벼슬도 하였다. 같은 삼국사기(문무왕8년, 668년6월12일)의 또 다른 기록, “… 유인궤가 황제의 칙명을 받들고 숙위宿衛하던 사찬 김삼광과 함께 당항진에 도착했다. 왕이 각간 김인문에게 성대한 예식으로 맞게했다” 유인궤는 당나라 장수이고, 김인문은 문무왕의 동생이다. 그리고 사찬은 8등급의 관위이다. 열 두세살 정도의 소년이 사찬의 관위로 당나라 황제의 칙사를 수행하여 귀국했다는 기록이다. 과연 가능했을까? 뿐만 아니라 삼광에 관한 기록은 신문왕대에도 나오는데(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3년, 봄 2월, 683년), “(신문왕이) 순지順知를 중시로 삼았다.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맞아들여 부인으로 삼았다. 먼저 이찬 문영文穎과 파진찬 삼광三光을 보내 기일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智常을 보내 납채를 하였는데… 하략” 일길찬은 7등급이고, 이찬은 2등급이며, 파진찬은 4등급이고, 대아찬은 5등급이다. 앞서 인용한 삼국사기의 기록도 모순이 있지만 12,3세의 소년이 8등급이었다가 14,5년 뒤에 네 단계를 승진해서 26,7세의 젊은이가 진골만이 될 수 있는 파진찬이 되어 있다. 과연 가능했을까?(역사 속에는 젊은 나이에 벼락 출세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세조 재위시 남이는 26세에 공조판서를 거쳐 27세에 병조판서가 되기도 했다. 정조 때 홍국영은 28세에 도승지가 되었다. 심지어 현대사에도 30대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원용덕, 백선엽, 정일권, 장도영 등 다수가 있다). 삼국사기 나오는 이런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삼광은 지소가 낳은 아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리고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김유신의 네 딸은 모두 삼광과 함께 광光자 돌림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삼광은 지소가 아닌 영모가 낳은 아들로 막내였을 가능성도 크다. 그는 문무왕 재위(661~681년) 시에는 나마(11등급), 사찬(8등급) 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신문왕 재위(681~692년) 시에는 파진찬(4등급)으로 모습을 보인다. 김유신과 영모가 결혼한 해가 612년이니, 만일 삼광이 그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면 50대 중반에 나마(11등급) 였고, 또한 70대에 고작 파진찬(4등급)의 관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유신은 612년 영모와 결혼하여 딸 진광, 신광, 직광, 영광과 아들 삼광을 낳았고, 환갑을 맞은 해인 655년에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셋째 딸 지소를 맞이하여 원술, 원정, 장이, 원망 등 아들 넷을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조선왕조실록,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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