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22세 풍월주風月主 양도공良圖公(19) |
보스톤코리아 2022-01-17, 11:14:46 |
김양도의 세계世系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양도의 아버지는 모종毛宗이다. 모종의 부모는 11세 풍월주를 지낸 하종과 미모낭주이다. 하종의 부모는 6세 풍월주를 역임한 세종과 미실이다. 세종의 부모는 태종이사부와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이다. 양도의 양부養父는 16세 풍월주를 역임한 설보종이다. 보종의 부모는 7세 풍월주를 지낸 설원랑과 미실이다. 미실은 양도의 증조모이며, 양부 쪽으로 보면 조모이기도 하다. 양도의 어머니는 양명공주이고, 양명의 부모는 제26대 진평왕과 보명궁주이다. 보명의 부모는 각간 구진과 지소태후이다. ‘아름답고 향기가 있었다’ 고 화랑세기에 기록된 보명은 처음에는 진흥왕의 후궁이었다(진흥왕과는 이부동모 남매이다). 576년 진흥왕이 죽은 후에는 제25대 진지왕의 후궁이 되어 석명을 낳았다(진지왕은 진흥왕의 차남이다). 579년 진지왕이 폐위되었고, 진흥왕의 장손인 김백정이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평왕으로 옹립되었다. 그리고 사도태후(진흥왕의 비)는 미실과 보명을 좌우후左右后에 임하고 진평왕을 색도하게 명하였다. 미실은 자신이 (비교적) 골이 낮고 천하다며365) 보명에게 먼저 진평왕에게 색도하도록 양보를 했지만, 보명은 당시 진지왕의 아이를 임신한지 3개월 가량 되었기에 사양했고 미실이 먼저 진평왕을 색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색에 눈을 뜬 진평왕은 스스로 보명궁을 찾았다(원문에는 ‘제기통창帝旣通暢 자지보명궁구도自至寶明宮求導’ 로 나와 있다). 보명은 진지왕의 딸인 석명을 출산 후 3년여간 진평왕 총애를 받아 양명공주를 낳았다. 양명은 어머니 보명을 많이 닮아서 역시 아름답고 향기가 나서, 진평왕이 특히 사랑하여 늘 곁에 두고 있었다. 나이가 20이 넘어 설보종에게 시집을 가서 보라와 보량을 낳았다.366) 그후 곧 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늘 신선처럼 지내는 남편 보종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보종이 17세 풍월주로 역임할 때 부제였던 김염장과 사통하여 아들(장명長明)을 출산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난새鸞鳥의 꿈을 꾸고 길조라 여겨 남편 보종과의 잠자리를 원하였지만, 그는 그만 자는척하며 돌아누워 코를 골았다. 보종은 양명이 잠자리를 원하기 직전에 조카인 모종과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자는척 하면서 벼루를 차서 모종의 옷에 먹물을 튀겼고, 그 옷을 갈아 입는 과정에서 양명과 모종은 사통하게 되어 김양도가 태어났다(양명의 나이 28세였다). 365) 미실과 보명의 골骨을 살펴보면, 먼저 미실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다른 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화랑세기에만 등장한다. 그렇다고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화랑세기에 의한 미실의 골과 통을 보면 그녀의 부모는 미진부와 묘도이다. 미진부는 2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 미진부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보면 551년 (진흥왕12년)에 아찬의 관등으로 대각간 거칠부 등 7명의 장군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죽령 이북에서 철령 이남까지의 한강상류지역 10 군郡을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미진부는 남모공주(부모는 법흥왕과 백제 보과공주이다)를 부인으로 맞고 있었는데, 남모와 준정이 원화의 우두머리로 있을때 서로 아름다움을 시기하여, 준정이 남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부인을 잃은 미진부는 묘도와 사랑하여 미실을 낳았다. 미진부의 부모는 아시공과 삼엽궁주(부모는 법흥왕과 벽화부인이다)이다. 미실의 어머니 묘도의 부모는 박영실과 옥진궁주인데, 옥진 역시 법흥왕의 후궁이기도 했다. 옥진의 아버지가 위화랑인데, 위화랑은 ‘남모와 준정의 사건’ 으로 원화가 폐지되면서, 화랑도를 설치했을때, 화랑도의 수장인 초대 풍월주가 되었고, 미진부는 부제로 발탁되었다가 2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 한편 보명의 부모는 대각간 구진仇珍과 지소태후이다. 지소의 부모는 법흥왕과 보도왕후이다. 구진 역시 551년 상기 언급한 같은 전투에 대각간 거칠부와 미진부 등의 장수와 함께 참전하여 한강유역을 쟁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구진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또는 삼국유사 등)나 화랑세기에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이 없다. 하지만 대각찬(대각간)의 벼슬을 지내고 지소태후의 침신인 것으로 보아 고위 귀족임에는 틀림없다. 366) 미실과 7세 풍월주 설화랑의 아들로 태어난 보종은 장성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14세 풍월주 김호림이 보종을 좋아하여 부제로 삼았는데 그들의 정이 마치 부부와 같았다. 또한 여자가 되어 섬기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까지 했다(동성애의 관계가 물씬 풍기는 장면의 기록이다). 여자와 결혼에 관심을 보이질 않자, 보종의 어머니 미실은 심히 염려가 되어 윤궁允宮(거칠부의 딸)의 딸 현강玄剛에게 모시도록 했지만 보종은 전혀 접촉하지도 않았다. 근심이 더욱 심해진 미실은 종실의 여자들을 모아서 보종과 친해진다면 큰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많은 여자들이 노력했지만 이루지 못하였고, 양명공주가 보종을 유혹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라와 보량을 낳았다. 보라는 김춘추의 첫 부인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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