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의 '텃밭'을 가꾸며...
신영의 세상 스케치 794회
보스톤코리아  2021-05-31, 11:31:02 
10여 년 만에 처음 지난해 이른 봄 뒤뜰의 '텃밭'을 만들었다. 20년 전쯤에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씨 아저씨)이 계셔서 가 끔 오셔서 밭을 일궈주시고 도와주시는 바람에 텃밭을 가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10여 년 전 돌아가셔서 그 다음부터는 마음에서 올봄에는 텃밭을 꼭 만들어야지 하고 몇 해를 지나다 보니 10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밭은 밭이 아니라 잡풀들의 천국이 되었다. 여기저기 바람 따라 날라왔던 풀씨들이 땅에 씨앗을 내려 가끔 이름도 모를 예쁜 들꽃들도 제 모습을 뽐내기도 하는 것이다.

남편은 '텃밭' 이야기가 나오면 50년이 다 된 이야기들을 들춰내며 얼굴을 붉히곤 했었다. 텃밭에 대한 기억이 추억이 아닌 생각 하고 싶지 않은 '억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어려서 아버지가 텃밭을 가꾸시다가 삼 남매(형과 누나)에게 풀을 뽑으라고 시키셨단다. 당신(아버지)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왜 어린아이들에게 풀을 뽑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라, 텃밭이나 꽃밭을 가꾸는 일에는 남편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내가 혼자서 오래 걸리지만 차근차근히 하는 편이다.

지난봄에는 텃밭을 일구고 싶은 급한 마음에 식품점에 '고추 모종, 깨 모종, 상추 모종'을 사다가 일찍 텃밭에 심었다가 그다음 날 눈이 내려 채소들이 추운 날씨에 얼어 죽어 다시 사다가 심었었다. 아마도 4월 중순 무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올해는 아무래도 늦게 모종을 사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5월 초쯤에 식품점에 가보니 옹기종기 여러 가지의 모종들이 이름표를 달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더 늦게 모종을 산다면 차례가 오지 않겠다 싶어 미리 사두었다가 좀 늦게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4월 중순쯤에 가깝게 지내는 지인(샌디 아주머니)이 우리 집에 오셨다가 뒤뜰의 텃밭을 일궈주셨다. 혼자 하면 지루했을 시간에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밭을 정리해주시니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4월 말에도 아직 날씨가 쌀쌀한 것 같아 미루었다. 우리 집 그라지에서 거의 한 달을 기다리며 가끔 물을 주고 햇볕을 쏘여주긴 했지만, 땅에 심기울 채소들이 시멘트 바닥 위 상장에 놓여 있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렇게 갇혀 있던 모종들(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깻잎)을 어제저녁에서야 흙을 파내고 땅에 심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래저래 핑계로 삼아 골프도 쉬고, 텃밭에서 하루 온종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내 자동차에 계속 서비스 사인이 나오길래, 어제 어포이먼트를 해뒀었다. 오늘 이른 아침에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집에 돌아와 꽃밭에 물도 주고 집 앞뜰과 뒤뜰을 둘러보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큰아들이 늘 골프와 운동 그리고 교회 일로 바쁜 엄마가 하루 온종일 집에 있으니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이른 아침 꽃들에게 물을 주는 일로도 행복했는데 '텃밭'에 채소들 덕분에 행복이 더 늘었다.

흙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보라.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또 깨닫게 한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면 훌쩍 자란 고추와 오이들을 상상해보라. 행복은 이미 채소가 자라기 전부터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요동치게 한다. 맛이야, 다음이다. 방울토마토가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서 초록이다가 하룻밤 새 빨갛게 익어 아침 인사를 나눌 때는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물을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잘 컸구나, 예쁘구나, 이런저런 칭찬을 많이 해주다 보면 늘 내가 더욱더 신바람이 일렁거려 상쾌한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이다.

뜰이 넉넉하지 않은 분들은 텃밭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화분에 미나리,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 파 등 많이들 키운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공부이기도 하다.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을 눈으로 매일 확인할 수 있으니 서로 나눌 이야기도 많아지고 재밌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어디 어린아이들뿐만일까. 어른들에게도 '텃밭'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귀한 자리이다. 또한, 창조주에 대한 감사와 피조물인 나를 고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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