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시화상간 詩畵相看 |
보스톤코리아 2020-08-17, 10:51:21 |
시화상간詩畵相看.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본다는 말이란다. 시와 그림은 서로 상통한다는 말로 확대할 수도 있겠다. 겸재정선과 당대시인 이병연과의 교류가 그러하다. 겸재의 화폭엔 친한 친구인 이병연의 싯구가 들어간다 했으니 말이다. 그림과 시의 조화는 그윽하다. 용해원 시인이다. 그대 내 마음에 한장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대를 만나던 날 그날의 풍경 그대로 보일듯 말듯 지울 수없게 남아 있다. (용해원, 추억) 그림을 볼 줄 안다는 말은 아니다. 시를 읽을 줄 안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외한도 명시名詩와 명작名作을 대하면 숨이 턱 막힐적도 있다. 명작은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이 흘러 나오는 거다. 걸작은 시공과 세대와 인종을 넘어 공평하는 말로 대신 한다. 자세히 보고 알고 읽는다면 감흥은 배가倍加된다. 반고호의 그림이 그러하다. 눈에 띄인 작품이 있었다. 일본 게이사를 그린 작품인데, 풍속화를 모사했다. 대大화가도 남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사진을 찍어 내듯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당당히 밝혔다 했던가. 일본 그림을 모사했다고 말이다. (인터넷 사진은 작품의 저작권이 만료되었다 했다) 궁금한게 있었다. 반 고호는 어떻게 일본그림을 볼 수있었을까? 무려 150여년 전, 1887년 작품이라 했는데 말이다. 말로만 듣고 정확히 모사 할 수는 없을 터. 그림은 눈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 고흐가 분명 일본 그림을 보기는 봤을 게고, 오래 쳐다보고 음미했을 터. 근세 일본의 수많은 목판화가 유럽에 퍼졌단다. 유럽에서 유행 할 수있었던 이유가 이채롭다. 박람회 때 전시품을 포장지로 쌌던게 일본그림 폐지廢紙였다는 거다. 마치 옛적 콩나물을 쌌던 종이가 신문지였던 것 처럼 말이다. 정육점 고깃근도 신문폐지로 싸곤 했다. 반 고호도 포장지 덕분에 일본화를 즐길 수있는 호사를 누렸다.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시와 그림이 서로 상통하는데, 예술과 정치는 상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이라면 반고호는 뼛속까지 친일파가 된다. 다시 광복절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10)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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