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14세 풍월주風月主 호림공虎林公(4) |
보스톤코리아 2020-05-04, 10:40:11 |
화랑세기에 기록된 김호림, [호림공은 처음 문노공의 딸 현강낭주玄剛娘主를 아내로 맞았으나 일찍 죽었다. 하종공의 딸 유모낭주柔毛娘主를 다시 아내로 맞이했다. 그 때 미실 궁주의 나이가 이미 많았는데 낭주를 매우 사랑하여 귀한 아들을 보기를 원했다. 공에게 명하여 천부관음千部觀音을 만들어 아들을 기원하도록 했다. 이에 선종랑을 낳았는데 자라서 율가의 대성인이 되었다. 공은 부처를 숭상함이 더욱 깊어졌다. 이에 유신공에게 양위하고 스스로 무림거사茂林居士라 불렀다. 조정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에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받들어 물었다. 알천공, 임종공, 술종공, 염장공, 유신공, 보종공 등과 더불어 칠성우七星友를 이루어 남산에서 만나 자적했다. 통일의 사업統一之業이 호림공 등으로 부터 많이 시작되었다. 성대하고 지극하도다. 찬하여 말한다: 태후의 후손이고 진골정통의 무리이다. 복되게 불선佛仙에 들어갔으니 공功이 천추에 드리우다.] 8세 풍월주 문노는 마흔이 지난 나이에 윤궁(거칠부의 딸)과 결혼하였다. 삼남(대강, 충강, 금강) 삼녀(윤강, 현강, 신강)을 두었는데, 격검술이 자신을 능가하는 수제자 김호림이 아주 늠름하여 둘째딸 현강과 혼인시켰다. 불행하게도 현강은 일찍 죽었다. 그리고 호림은 11세 풍월주를 역임한 하종의 딸이자 미실의 손녀인 유모와 결혼하였다. 이 때가 정확하게 어느 시기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546~548년생으로 추정되는 미실이 늙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환갑의 나이로 본다면 607년 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종(자장율사)이 590년생이란 기록도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에 기록된 아버지 호림의 출생년도가 579년이기에 11살에 이미 둘째 부인과 혼인해서 아들을 얻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처외조모인 미실의 명으로 천부관음을 만들어 아들 낳기를 기도해서 낳았다는건 아마도 결혼 후 곧 아이가 없었다는 반증도 된다. 또한 김호림 다음으로 풍월주에 오르는 김유신은 당시 17세였다. 김유신은 595년생이기에 그는 612년에 풍월주가 되었고, 호림은 9년간의 풍월주를 마치고 상선이 되면서 곧 불가에 귀의했다. 그리고 화랑세기에는 그런 기록이 없는데 자장은 어린나이에 양친을 여윈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당으로 유학한 후 7년만에 귀국한 해가 선덕여왕12년인 643년이었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당시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자장율사의 출생연도는 610년 무렵이 더 설득력이 있다. 어쨌든 선종(자장율사)는 천부관음의 기도로 태어났다. 천부관음이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을 말한다. 천수경에 등장하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보살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큰 작용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즉 모든 소원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아들 선종을 얻은 김호림은 더욱 불도에 정진했다. 그는 칠성우를 조직하여 경주 남산에서 자적하며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때는 자문을 하였으며, 후일 삼국을 통일하는데 앞장선 수 많은 젊은 낭도들을 양성하였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김호림의 세계世系를 보면, [아버지는 복승공인데 산종공의 아들이다. 산종공이 법흥의 딸인 사도미沙道美를 아내로 맞아 낳았다. 산종공은 곧 법흥의 이부동모제異父同母弟이다. 산종의 아버지는 비처대왕이다. 그러므로 호림공은 비처의 증손이다. 어머니는 송화공주인데 그 아버지는 영실英失 각간으로 지소태후의 계부繼夫가 되어 낳았다. 그러므로 공은 지소의 외손이 된다. 사도미의 어머니는 사룡沙龍은 사량궁주의 손이다.] 김호림의 세계에 관해서는 이미 자세하게 살펴 보았기에 여기서는 하나의 의문점만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인용문에 “산종공은 곧 법흥의 이부동모제異父同母弟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확하지 않은것 같아서 삼국사기와 화랑세기를 교차 검증해 보면, 비처왕은 왕후 선혜부인을 비롯하여 후궁 벽화 등 7명의 후궁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아무도 낳지 못하고 후궁 벽화만이 500년 어느날 산종을 낳았다. 그리고 비처왕은 동년 11월에 죽었다(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왕후 선혜부인이 딸 보도부인을 낳았는데 법흥왕의 왕비가 되어 또 딸 지소(진흥왕의 모후)를 낳았다. 한편 법흥왕의 부모는 지증왕과 연제태후이다. 산종은 법흥왕의 이부동모 동생이 아니라 사위이다. 그리고 산종의 어머니 벽화는 나중에 법흥왕의 후궁이 되어서 삼엽공주와 미진부를 낳았고, 미진부는 미실의 아버지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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