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딸아이와의 동거가 시작되고... |
신영의 세상 스케치 729회 |
보스톤코리아 2020-02-03, 10:24:21 |
딸아이가 2008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학(아랍 히스토리)을 졸업한 후 일을 시작하다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마친 후 고등학교에서 9학년을 맡아 선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되겠다던 딸아이는 막상 선생 직업을 갖고 나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던 모양이다. 한참 후 엄마 아빠한테 직장(직업)에 대한 자신의 깊은 생각을 말해온다. 부모로서 딸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고 얘기를 해줄 뿐 무엇이라 특징지어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채 되기 전 선생 직업을 그만두고 말았다. 그 좋은 직장(Job)을 그만두고 다급한 마음에 임시 선생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움직이는 모습에 엄마로서 속이 상했었다. 그때 딸아이에게 해준 말 한마디는 '현재의 직장이 싫더라도 다른 직장을 찾아놓고 그만둬야 한다'고 얘기를 해주었었다. 그 당시에는 엄마가 해주는 얘기도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 직장을 찾으며 그 이야기를 깊이 새기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가 챙겨주는 따뜻한 세상이 아닌 밖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엄격한지 그때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딸아이의 세상살이는 현실과 마딱뜨리며 시작되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서 Harvard University Health Services에서 '코디네이터'로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 꽤 오래도록 그곳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3년 전 보스턴 시내의 Goodwin Law Firm Boston에서 '스페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딸아이가 이제 제가 좋아하는 자리를 잡았는가 싶다. 하지만 일하는 환경 조건은 아주 좋은 편이지만, 생각보다 보수가 넉넉치는 않은가 싶다. 무엇보다도 보스턴 시내에서 생활하며 산다는 것이 경제적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쉽지 않음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는 보스턴 시내 Seaport 근처 딸아이가 일하는 빌딩을 구경시켜준다기에 다녀왔다. 가끔 사진을 담으러 Boston Harbor나 Faneuil Hall Marketplace(Quincy Market)은 계절마다 한 번씩 다녀오곤 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자신이 일하는 오피스를 구경시켜주고 높은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보스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마주하면서 처음 보스턴을 구경 온 사람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내 딸이지만 이 많은 사람들 속 Career Woman으로 자기의 일에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서 있음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지난 12월 초에 생각지도 않았던 일, 갑작스러운 일이 우리 모녀 사이에 일어났다. 아니 내게는 큰 사건이었다. 느닷없이 10년을 떨어져 살던 딸아이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와 사는 이유는 돈을 모아서 자신의 개인 콘도를 하나 사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을 절약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박수로 응원할 일이지만, 그 장소가 내 집이라는 것 매일 마주해야 하고 집에서 5분 거리이지만 기차 스테이션까지 아침저녁으로 내려주고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12월 한 달은 내게 참으로 버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집 아들 둘과는 모자간에 편안하게 잘 지내는 편이지만, 딸아이는 아빠를 어려서부터 더 좋아하고 엄마하고는 뭔지 모를 무엇인가 있음을 서로 알고 있다. 그렇게 10년을 계속 떨어져 살면서 딸아이와 엄마 둘은 모녀지간에 깊은 얘기는 꺼내놓지 않고 가족이 모이면 편안한 얘기들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곤 했었다. 결국, 12월 한 달을 서로 마주하고 생활하며 오랫동안 묵혀두며 피해왔던 모녀간의 곪은 자리가 터지고 말았다. 딸이랑 엄마랑 서로 쌓였던 서운한 마음을 내어놓고 둘이서 엉엉 울었다. 곪았던 상처는 터져야 새 살이 돋는 법임을 새삼 또 깨닫는다. 섣불리 건드리면 성이 나서 더욱 안 좋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일이나 관계에서든 때와 장소가 중요하듯이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딸아이와 엄마의 딱히 이렇다 할 것 없이 쌓인 오래 묵은 서운함들을 둘이서 속을 터놓고 두세 시간을 펑펑 울며 내어놓으니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년생으로 내리 두 남동생을 보았던 딸아이는 할머니(시어머님)께서 크도록 키워주셨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이 늘 그리운 아이였음을 생각하니 참으로 고맙고 미안한 딸아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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