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설 수 있어야 마주 설 수 있음을... |
신영의 세상 스케치 699회 |
보스톤코리아 2019-06-17, 13:40:20 |
각양각색의 인생을 마주하다 보면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렇다,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얼굴들이 그 하나 같은 것이 없는 것처럼 삶이나 인생도 그 하나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내게 지금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나의 환경을 탓하며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를 탓하거나 부모를 원망하며 살 때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남의 일보다는 내 일이 언제나 가장 큰 문젯거리고 제일 커다란 아픔이고 고통이고 불행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기쁨과 행복마저도 자신의 것이 제일 중요하고 우선인 까닭이다. 엊그제는 교회에서 20여 년을 곁에서 보면서 언니처럼 편안하고 그러나 깔끔한 성격에 차가움마저 감도는 그래서 더욱 내 맘에 좋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 언제부터인지 무엇이 시작이었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해 벌써 만 3년을 나가지 않고 있다.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 권사님들의 전화가 있었지만, 시간이 내게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전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그렇게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분들이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쉬이 발길이 옮겨지질 않아 미루다 보니 지금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사람은 지극히 상대적인 동물이다. 그래서일까. 억지로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고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고 멀어지고 싶다고 멀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기다리는 편이다. 어쩌면 그 기다림을 즐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삶에서 지천명의 언덕을 오른 이 나이쯤에 배운 것이 있다면 아마도 '기다림'과 그 기다림을 '즐기는 법'이 아닐까 싶다. 그 어떤 관계나 일에서 보채지 않고 안달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을 만큼에서 기다림으로 있는 나를 만나는 일 생각하면 내게 참으로 오롯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삶에서 가장 어둡고 힘들었던 절망의 시간이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던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 시간은 나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에게 문틈조차 열어주기 싫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과 고통이라는 시간은 그 어둠의 불청객은 나와 상관없이 찾아왔고 또 홀연히 말도 없이 떠났다. 다만, 떠나고 난 후에야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값지고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 어둡고 깜깜한 긴 터널을 빠져나와서 만나는 빛은 참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고 환희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나눌 때만이 더욱 소중하고 귀함을 깨닫는 존재다. 내게 닥친 불행이 나 혼자 바라보고 있을 때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이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이외의 또 다른 나를 만난 경험을 하게 되면 내가 생각했던 불행은 불행이 아님을 고백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과 불행이 나의 기쁨과 행복이 아니듯 나의 아픔과 고통과 불행이 그 누군가에게 행복이 아닌 삶의 희망이 되어 나눔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나눔으로 마주할 때 더욱 삶의 기쁨과 행복이 되는 것이다. 엊그제 만나고 돌아온 이가 바로 내게 이런 사람이었다. 내가 너무 힘들 때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늘 가슴에서 떠나지 않던 사람. 어느 날엔가 문득 보고 싶어지면, 자연스럽게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연락이 이어지는 사람. 그렇다고 우리는 호들갑스럽게 만나지도 않았다. 서로 말 없는 기도로 늘 교감하며 교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무엇에 서로 쫓기어 본 기억도 없다. 그렇게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을 그 거리만큼에서 서로를 위해 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그 사람이 그랬듯이 나 역시도 그랬다. 그저 기다림으로.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담소를 하며 나누고 돌아온 길은 어린아이가 오랜만에 엄마의 품 안에 안긴 것처럼 포근했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늘 함께 교감하고 있음을 증명해줬다. 서로에게 깊이 묻지 않아도 이미 서로를 안 까닭일 게다. 서로 긴 아픔과 고통의 시간을 알기에 말이 없이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우리로 있는 것일 게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을 든든한 버팀목 같은 그 사람에게서 나는 가끔 그 사람의 버팀목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누구나 서로 홀로 설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서로 마주 설 수 있음을 깨닫는 오늘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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