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52 ] 네가 아담이라고?
보스톤코리아  2019-03-11, 10:57:06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뭐라고? 네 이름이 아담이라고?” 그랬다. 그가 자신을 아담이라고 소개했을 때, 필자는 이 친구가 장난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필자에게는 먼 옛날 에덴동산에 살던 그 아담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빚어 숨을 불어넣어 아담을 만들었다고 성경에 씌여있지 않은가. 불경스럽게도 아담이란 경건한 이름을 사칭하다니?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담은 터키에서 왔다. 터키어를 포함한 알타이어를 연구하면서 필자는 아담이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특정한 인간 아담 즉 고유명사 아담을 만들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보통명사 아담 즉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노아의 방주가 있던 아라라트 산도 터키에 있으니까 창세기의 배경이 터키일 수도 있지 않은가? 에덴동산이 터키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증거도 없지 않은가? 

이런 궁금증들을 신학자들의 관심사로 남겨두려다가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필자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adam은 히브리어로도 보통명사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흙에서 만들어진 존재’이고 히브리어로 흙은 adamah이다.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니까 어원적으로도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다. 우리 신화에서는 최초의 인간 단군이 인내심 많은 곰에게서 왔으니까 흙과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라틴어로 man은 homo이고 human은 humanus이며 humus는 ‘흙, 땅’을 의미한다. 세 단어가 모두 같은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적어도 유럽과 중동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은 인간이 흙에서 왔다는 전제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틴어 humanus는 형용사이므로 ‘사람의, 인간의’란 뜻이다. 오늘날 영어에서도 humane(인간적인)이란 단어로 남아있다. posthumous는 흙으로(humous) 돌아간 후(post) 즉 작가가 죽은 이후에 출판되는 유고집을 말한다. 미국영어에서는 /h/가 발음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human을 /júːmən/(유먼)이라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어에서는 글자 ‘h’가 아예 발음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뜻하는 homme는 /ɔm/(옴므)로 발음한다.  

학창 시절 지겹도록 들었던 Homo sapiens(지혜로운 인간)에 나오는 homo도 ‘사람’이다. 사실 인간은 지혜롭기 이전에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Homo ludens 즉 ‘놀이의 인간’이 먼저이다. 아무튼 다시 ‘흙’을 의미하는 humanus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 어근은 hom-, hon-, om-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exhume(발굴하다)는 흙(hume) 밖으로(ex-) 꺼낸다는 뜻이고, homicide(살인)는 사람(hom-)을 죽인다(-cide)에서 왔으며, hominid(원시인류) 등이 있다. homage(경의, 존경)란 단어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봉건영주에 대한 존경과 충성이란 뜻에서 유래해서 지금은 그 의미가 넓어졌다.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언제나 조지 오웰의 <Homage to Catalonia>란 작품이 떠오른다.   

 라틴어 humilis에서 온 humble은 말 그대로 땅바닥으로 낮아진다는 의미에서 ‘겸손한’이란 뜻이 되었고, 그 동사형이 humiliate(굴욕감을 느끼게 하다), 명사형이 humility(겸손, 비하)이다. 땅바닥으로 낮아지게 만드는 것이 창피를 주는 것이다. 이 밖에 humus(부식, 부식토)는 흙이 부식되는 것을 말하고, inhume은 흙 속에 넣는 것이니까 ‘매장하다’이다. 라틴어 inter와 동의어이다. nemo는 부정접두사 ne-와 사람을 뜩하는 hemo가 결합한 것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뜻이다. 

camomile(카모마일)은 그리스어 chamaimelon에서 왔다. khamai가 ‘땅’이고 melon이 ‘사과’이므로 ‘땅의 사과’란 뜻이다. 뜻은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단어가 chameleon(카멜레온)이다. 역시 khamai(땅)과 lion(사자)의 합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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