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64 |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 풍월주風月主 하종夏宗(5) |
보스톤코리아 2019-02-25, 10:27:58 |
하종의 어머니 미실, 그녀는 지소태후의 명으로 입궁하여 세종전군을 섬겼다. 태어나면서 부터 외조모인 옥진궁주로 부터 교태와 가무를 배웠기에 그녀가 바치는 색공의 늪에서 세종은 헤어나질 못하였다. 이에 염려한 세종의 어머니 지소는 미실을 출궁시켰다. 이 때가 562년 여름이었다. 미실은 어려서 부터 서로 사랑해 온 연인 사다함을 만날 수 있었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당시 15,6세 가량의 꿈 많은 청춘으로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하고 궁밖 세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작렬하는 여름의 태양처럼 점점 데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나 그들이 믿었던 석존도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했다. 9월이 오면서 사다함은 대가야 정벌에 출정하였다. 그는 나이가 어려서 가지 않아도 되는 전장戰場을 왕에게 간청하여 '화랑의 사명'과 '귀족의 의무'를 다하였다. 이에 미실은 사다함을 보내며 '풍랑가'를 불러 자신의 사랑을 전하였다. 한편 세종전군은 미실이 출궁된 뒤 상사병에 걸려서 나날이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이에 지소태후는 융명을 아내로 맞아 그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세종의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융명은 지증왕의 3남 김진종과 지소태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세종전군과는 이부동복 자매이다). 당시까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벽화와 오도 그리고 옥진의 세 정기를 타고 태어나서, 최고의 미도媚道(교태)와 가무를 전수 받아 색공을 했으니 어찌 세종인들 그 늪을 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하는수 없이 지소태후는 아들의 청을 받아드려 미실을 다시 불러 입궁시켰다. 그리고 사다함은 대가야의 반란을 정벌하고 개선하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 미실은 이미 세종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이에 청조가로 자신의 심경을 달랬다. 다시 세종의 사랑을 받은 미실은 아들 하종을 낳았다. 그와 동시에 세종은 정처 융명을 멀리하였고, 융명은 스스로 궁을 떠났고 미실은 정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한편 왕후 사도는 미실이 하종을 출산한 후 곧 태자인 동륜에게 색공을 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미실은 동륜태자의 아이를 임신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미실은 태자가 아니라 왕을 사모하였기에 사도의 잉첩이 되어 진흥왕을 모시길 바랐다(잉첩은 가까이에서 시중을 드는 여자 종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이모인 사도왕후를 도와서 왕을 모시는 孕妾을 의미한다). 이는 진흥왕이 미실을 본 후에 그녀의 미모에 빠져 왕비에게 질문하는데서도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왕비는 미실을 진흥왕에게도 색공을 받치도록 했다. 이에 미실은 진흥왕과 그의 아들 동륜태자, 그리고 동륜의 장자인 진평왕까지 3대에 걸쳐 색공을 하였다. 물론 진평왕에게는 나중에 그가 왕위에 오른 579년의 일이다. 아름다운 미실의 미도媚道와 가무에 흠뻑젖은 진흥왕은 이부동생 세종에게는 융명을 다시 불러드려 처로 삼게하고 미실을 전주殿主에 봉하고 '천하를 뒤집을(원문에는 총경사해寵傾四海로 기록 되어 있다)' 만큼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기간이 되어 미실이 딸을 출산했다. 진흥왕은 자신의 딸로 알고 애송艾松공주로 봉했다. 애송은 사실 태자 동륜의 딸이었다.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미실은 궁중에 이르러 태후의 아들인 전군을 교태로 섬겼다. 전군은 깊이 빠져들어 기동하지를 못했다. 태후가 전군이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궁궐을 나가 집에 머물도록 명했다. 미실은 개의하지 않고 사다함과 사통을 하고 부부가 되기로 약속을 했다. 태후는 이에 전군에게 명하여 융명을 아내로 맞도록 했다. 전군은 미실을 사모하여 병이 났다. 태후는 부득히 미실을 다시 불러들였다. 마침내 하종을 낳았는데, 전군이 미실을 애지중지하여 다시는 융명을 사랑하지 않았다. 융명은 노하여 궁궐 밖으로 나갔다. 공이 출생한 지 얼마 안 되어, 미실은 사도의 명으로 태자에게 색공을 하여 임신을 했다. 진흥제를 사모하여 애태우는 미실의 모습이 더욱 더 애처로웠다. 제帝가 사도왕후에게 말하기를 "너의 조카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미녀인데, 어찌 너의 잉첩이 되지 못하고 다른 데로 시집갔는가?" 했다. 후后는 이에 미실을 3대代를 모시는 자리로 제帝에게 추천했다. 제帝가 한 번 사랑하고 두 번 사랑하고는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전군에게 명하여 다시 융명을 받아드리게 했다. 그리고 미실에게 전주殿主의 이름을 내렸는데…후后와…. 사랑함이 천하를 뒤집을 만했다. 제帝가 출입할 때 반드시 동행시켰다. 황후는 … 궁과 삼주三柱의 신神이 될 것을 맹세했다. 전주는 문장을 잘 지었다 …. 제帝가 조정에 나아가 업무를 볼 때, 전주가 옆에서 모셨다. 문서를 보고 참결하여 그것이 옳은지를 …. 조야朝野의 권세가 옥진궁으로 돌아갔다. 대원신통大元神統이 다시 성하게 일어났다.] 모든 왕족은 모계에 따라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으로 구분되었다. 왕비는 그 두 계통에서만 나올 수 있었고, 그들은 왕비 배출을 위해 경쟁하였다. 진골정통은 옥모로 부터 시작되어 지소로 이어졌다. 진골정통은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 반면에 대원신통은 보미寶美에게서 시작되어 옥진으로 이어졌으며 역시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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