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62 |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 풍월주風月主 하종夏宗(3) |
보스톤코리아 2019-02-11, 11:46:28 |
옥진의 남편 박영실은 법흥왕의 누이인 보현공주의 아들로 외삼촌인 법흥왕과 벗이 되어 자주 궁궐에서 축구도 하면서 지냈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없었던 법흥왕을 이어 차기 왕위에 오를번도 하였다. 530년대 말, 법흥왕은 연로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적자가 없었던 그는 차기 왕위를 물려줄 왕자王者를 구하였다. 그 물망에 오른 후보자가 누이의 아들인 박영실과 후궁 옥진으로 부터 얻은 서자 비대전군比臺殿君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왕비 보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적녀인 지소와 옥진의 아버지 위화랑 등 총신들의 반대로 왕좌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법흥왕을 이은 왕은 어린 외손자(조카도 된다) 삼맥종이었다. 그가 법흥왕의 딸 지소와 법흥왕의 동생 입종 사이에서 태어난 진흥왕이다. 즉 지소는 계부繼夫인 박영실을 왕위에 올려 왕후가 되기 보다는, 어린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태후가 되면서 섭정의 권력을 선택하였다. 어린 진흥왕이 왕위에 오를 당시에는 입종은 죽고 없었으며, 과부가 된 지소는 아버지 법흥왕의 명으로 박영실을 계부로 맞이 하고 있었다. 한편, 하종의 어머니 미실이 태어난 태몽도 외할머니인 옥진이 꾸었는데, 오래전 묘도를 낳을때 날아들어온 칠색조가 이번에는 자기 가슴에서 나와 묘도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놀라 꿈에서 깨어난 옥진은 이상하게 여겨 묘도의 침실로 가 보았더니, 묘도와 미진부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미진부는 삼엽궁주가 어머니이며, 삼엽은 법흥왕과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벽화의 딸이다. 묘도는 어릴때 법흥왕의 후궁으로 있을 당시 늘 미진부를 사모하였다. ‘작고 좁다’는 이유로 왕의 총애도 받지 못하였고, 한편 또래의 미진부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도 했다. 묘도는 후궁 옥진의 딸이었고, 미진부는 공주 삼엽의 아들이었기에 그들은 궁중에서 전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묘도는 미진부와 상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하였으며 장래를 맹세하였다. 법흥왕이 540년에 죽었고, 그들은 결혼하였다. 그 후 미실이 태어났다. 그 당시가 546~8년이었다. 드디어 신라에는 벽화 이래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태어났다. 미실은 외할머니인 옥진의 절묘한 용모와 풍후함을 닮았고, 아버지 미진부의 외할머니인 벽화의 환하게 밝음을 닮았으며, 옥진의 어머니인 오도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닮았기에, 백화의 신묘함으로 뭉쳤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수가 모여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외할머니 옥진은 ‘우리의 도(대원신통의 인맥姻脈)’를 일으킬만 하다면서 어릴때부터 교태嬌態(원문에는 아첨할 媚字인 미도媚道로 기록되어 있다)와 가무를 지도하였다. 하지만 후일 562년경에 세종전군의 후궁이 되어 궁으로 들어갈 때 옥진은 외손녀 미실이 왕의 후궁이 아닌 전군의 후궁으로 감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미실의 아름다운 ‘꽃’은 진흥왕의 ‘나비’를 유혹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었다. 곧 미실은 진흥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진흥왕과 세종전군은 이부동복의 형제이다. 진흥왕의 부모는 입종과 지소태후이고, 세종전군의 부모는 이사부와 지소태후이다.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때 미진부공의 어머니 삼엽공주三葉公主와 늘 궁중에서 입시하여, 묘도와 전殿을 사이에 두고 머물렀다. 묘도가 바라보고 … 미진부공을 사모했다. 미진부공이 회랑을 지나가는 것을 틈타 … 들여서 상통했다. 서로 크게 맞아 동혈의 …이 되기를 맹세했다. … 왔다. 법흥제가 죽자 태후가 아시공과 가까이 하고자 하여 …을 허락했는데,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했다. 하루는 옥진궁주가 꿈에 칠색조가 자기의 가슴속에서 날아 묘도에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나 이상하게 여겨 며도의 침실에 가서 엿보았다. 그 때 묘도와 미진부공이 바야흐로 함께 함께 사랑好을 나누는 중이었다. 옥진궁주는 이에 기뻐서 알려주며 “너희 부부는 이제 귀녀貴女를 낳을 것이다” 했다. 과연 미실을 낳았다. 용모가 절묘하여 풍후함은 옥진을 닮았고, 환하게 밝음은 벽화를 닮았고, 빼어나게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아서 백화百花의 신묘함을 뭉쳤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수를 모았다고 할 수 있었다. 옥진이 “이 우리 아이는 우리의 도道를 일으킬 만 하다” 말하고, 좌우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며 교태를 부리는 방법과 가무歌舞를 가르쳤다. 태후의 명으로 세종의 궁으로 들어가려 할 때 옥진이 근심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를 가르친 것은 장차 너의 숙모의 잉첩이 되게 하려는 것이지 어찌 전군을 섬기라고 한 것이겠느냐?” 했다. 미실이 “빈첩의 도는 색공色供에 있는데 어찌 제帝를 받들지 못하겠습니까?” 했다. 옥진은 크게 기뻐하여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이 아이는 족히 도를 말하니 나는 근심이 없다” 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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