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견디는 방식(2) |
보스톤코리아 연재소설 |
보스톤코리아 2018-07-30, 10:29:14 |
그렇게 몇 번을 기다리던 은미를 그 뒤로는 볼 수가 없었다. 학교를 그만둔 것도 아닌데 바로 옆 반에 있는 은미를 복도에서도 볼 수 없었다. 우린 서로 피해버리는 사이가 된 것이다. 사회적 신분의 차이는 자본, 명예, 권력 등으로 판가름 나기도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있었던 1970년대에서는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기본권이 판가름 나기도 했다. 난 세 오빠에게 치여 기득권에서부터 제외된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잠시 대학을 준비했었던 적이 있다. 3년 내내 주산과 부기에만 매달려 있던 나는 학원을 두어 달 다니다가 포기했다.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수준을 절감한 것이다. 비틀린 마음으로 청춘을 지나며 나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순간은 수시로 찾아왔다. 지금은 한 사람의 삶을 이끌어 가는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두고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다. 다 저마다 놓인 처지가 다르고 그 처지에 맞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십 대의 나는 6학년 이후로 성장한 그 지적 허영이 절정에 닿아 있던 때였다. 내가 비참함을 수시로 느껴야 했던 것은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이들은 그들의 성곽 안에 있는 이들과 사회적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도 혼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늘 은미가 생각났다. 젊은 열정을 포기하는 대신 얻은 마음의 성장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속성과 부합한 열정이 이 세상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내 속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포기에 의한 것이든 도를 닦은 것이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남기 유리한 대로 자기 철학을 이룬다. 은미는 늘 내가 성장의 중요 기점에 서 있을 때 기억에서 살아나는 아이였지만 늘 머리가 깡통 같은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는 얼굴 표정이 먼저 떠올랐고 그때마다 나의 치졸한 속성은 아직도 여전히 그 아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한식집 입구 주차장에는 서너 대의 자가용이 서 있었다. 나는 한식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어컨 위에 올려놓은 방향제 때문에 자꾸 재채기가 나서 종업원에게 방향제를 에어컨 바람 없는 곳에 놓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 주인이 나와 알레르기가 있냐고 상냥하게 묻고는 방향제를 계산대 밑에 넣었다. 주인은 누굴 기다리냐고 묻는다. 친구를 기다린다는 내 대답에 “친구?”라고 다시 내게 묻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다는 내 대답에 아주 느리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내가 너에게 친구니?” 나는 깜짝 놀라 주인을 올려다본다. 은미다. 미간 사이에 두 개의 곰보 자국이 파운데이션으로 가려진 얼굴 뒤에 분명히 있다. 은미는 안채로 들어가자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는 마당 가운데는 채송화 꽃밭이 있다. 작은 꽃들이 종종종 피어 있다. 채송화만 가득한 꽃밭을 보고 있던 내게 은미가 “꼭 교실 같지?”라고 말한다. 난 웃으며 은미를 따라 마루 위로 올라섰다. 은미는 우이동에서 기품 있는 한식집 주인이 되어 있었다. 이 한식집 옆으로는 갤러리가 있는데 지금은 은미 남편의 도자기 전이 열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은미를 생각하면 은미의 지금 생활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난 작은 아파트 전세에 살고 있고 직업은 연극이나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다. 젊은 날에는 꽤 잘 팔리는 작가였는데 지금은 몇 년에 한 편 정도 드라마로 만들어 질까 말까 하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작가가 되어 있다. 원고료는 생활하는데 턱도 없이 부족하다. 은미의 주거 환경과 하고 있는 일의 규모를 보자 배꼽 밑에서부터 어떤 꼬챙이 하나가 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로 뻗대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금세 괜찮아졌다. “너 좀 놀랐지? 네가 왜 놀라고 있는지 나는 알아. 난 깊은 네 속 마음을 알지는 못했어도 네가 무엇 때문에 나를 피했었는지 짐작하고 있었어. 난 오늘 좀 알고 싶네. 그 구체적인 이유를 말이야. 왜 날 그렇게 징그럽다는 듯 피했어?” 장난기가 가득 배인 목소리로 묻고 있는 은미의 입꼬리가 살짝 들려 올라갔다.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들려 올라간다는 것은 오랜 세월 자신 있게 살아온 자들의 전유물 같은 것이다. 난 이 때문에 너를 멀리했다는 말을 선뜻하지 못했다. 만약 은미를 생각하면서 단지 그 이유만 있었다면 난 쉽게 ‘네 머리에서 이를 본 순간 그냥 네가 징그러워 보여서 그랬어.’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게 자라나던 마음을 나는 안다. 세 오빠의 일이라면 술에 절어 살던 아버지도 정신을 꽉 붙잡고 발 벗고 나서곤 했다. 돈을 벌지는 못했어도 오빠들에게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어디서든 돈을 꾸어 오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유희주 작가 유희주 작가는 1963년에 태어나 2000년『시인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으로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 산문집으로 『기억이 풍기는 봄밤 (푸른사상)』이 있다. 유희주 작가는 매사추세츠 한인 도서관 관장, 민간 한국 문화원장, 레몬스터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코리안릿닷컴(koreanlit.com)을 운영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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