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노시老枾 |
보스톤코리아 2018-03-12, 13:36:19 |
한창 가을이 깊어 갈적이었다. 한국을 방문중이었다. 지방에 일이 있어 갔다가, 돌아오는 차중이었다. 차는 고속도로위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으로 어느집 감나무가 스쳐갔다. 잎사귀는 모두 떨궜다. 잘 익은 감이 두어개 달랑 가지에 달려있었다. 파란 가을하늘색과 붉은 감은 극명하게 조화했다. 아아, 감탄사가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 감은 반드시 두어개 남겨야 한다 했던가. 까치밥이라 했다. 잘 익은 감은 홍시紅枾라 한다. 노시산방老枾山房. 미술평론가 근원近園 김용준의 다른 호이다. 노시老枾라는 말이 내 눈을 잡았다. 늙은 감나무라는 말이다. 내게는 푹 익은 감 열매로 읽힌다. 그의 글중 한 구절이다. ‘원래 나는 노경老境이란 경지를 퍽 좋아한다. … 노련老練이란 말도 내가 항상 사랑해 온 말이거니와, … 노자老子를 좋아 했고,..노석老石도인… 유장하고 함축있는 맛을 느끼게 한다.’ 오래전이다. 달리는 한국 전철안이었다. 가방을 가슴에 안은 젊은이가 앉아 졸고 있었다. 앞에 서있던 중년여인이 투정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앉은 젊은이를 향한 불평이었고, 자리를 양보하라는 압력이었다. 가벼운 전철 흔들림마냥 투정이 계속되었다. 그닥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옆에 앉았던 노인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아줌씨는 젊어서 많이 앉아서 갔을테니, 이젠 서서 가도 돼”. 주위에서 큭큭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속시원하다는 다른 표현이다. 젊은이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은 빠르고 붉게 물들었다. 청년이 가방을 챙겨 주섬주섬 일어서고 있었다. 옆 노인이 가만있지 않았다. 젊은이 팔을 잡고 눌러 앉힌 거다. 덕분에 젊은이는 내릴 정거장을 놓쳤는지도 모른다. 노인은 노시老枾일터. 하지만 말과 행동은 떫지않았고, 오히려 걸쭉했다 해야할까?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나는 본디 조선사람인 것을 그러므로 조선의 시를 노래하리라. 그대들도 마땅히 그대들의 시를 쓰게나 괜스레 이것 저것 시늉치 말고 (다산 정약용, 노인에게 유쾌한 일).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이다. 노인의 독백이다. “I may not be as strong as I think, but I know many tricks and I have resolution.” 몸은 늙어 힘은 없어도, 지혜는 늘어간다. 노인이 한마디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 누군가 했다는 말인데, 동서고금을 통해 틀림없는 말일게다. 덜 익은 감은 떫은데, 잘 익은 감 홍시는 입에 달다.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욥기 29:8)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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