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탄생 100주년에 바라보는 그의 삶 |
보스톤코리아 2017-09-14, 21:14:57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편집부 = 올해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일인 9월 17일을 전후하여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려 그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동서양의 음악기법을 융합시키며 현대음악의 한 획을 긋는 업적을 이룬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그의 음악은 고국에서 오랜 세월 동안 민족주의 이념 논쟁에 가려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란 윤이상은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 그는 39세가 되던 1956년에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3년 만에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 음악제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개의 소품’과 ‘일곱 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으로 데뷔했다. 동양의 음악과 사상을 서양 음악에 접목시켰다는 큰 호평과 함께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는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관현악곡인 ‘예악’이 초연되었고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했던 그는 1963년 북한을 방문했던 경력으로 1967년 베를린에서 간첩 혐의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강제 납치됐다. (동백림 사건)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수감되자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국제 사회의 여론도 악화됐다. 그가 수감 생활 중 작곡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은 1968년에 독일 초연에서 31번의 커튼콜을 받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윤이상 구명을 위한 본격적인 서명 운동이 국제적으로 벌어진다. 지휘자 카라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슈톡하우젠 등 세계적인 저명 인사 200여 명이 서명해 파장을 일으켰고 윤이상은 2년 여의 수감 생활 후 1969년에 사면되어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1971년에 서독에 귀화한 후 다시는 대한민국에 입국하지 못하였다. 그의 음악도 한국 내 연주가 금지되었다. 1972년에는 뮌헨 올림픽에서 그의 작품인 오페라 ‘심청’이 성공적으로 공연되었고, 1977년에는 베를린 대학의 정교수로 임명된다. 서양 악기와 음악 체계로 동양적인 음색과 미학을 표현할 수 있게 고안한 ‘주요음기법(Hauptton)’과 ‘주요음향기법(Hauptklangtechnik)’이라는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사용하여 율, 피리, 영상 등 150여 개의 작품을 남겼다. 훗날 ‘유럽에 현존하는 5대 현대 작곡가’, 유럽 평론가들이 선정한 ‘20세기의 중요한 작곡가 56인’, 미국 브루클린 대학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음악가 44인’에 지목되는 등 그의 음악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는 대단하다. 윤이상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1995년 독일에서 78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고향이었던 통영시에서는 2000년부터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가 열리는 등 그의 예술적인 행적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그를 기리는 수 많은 음악 및 예술 행사들이 국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다. 보스톤에서는 한미예술협회에서 주최하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9월 30일(토) 오후 5시에 리버스 스쿨 컨서바토리(333 Winter St., Weston, MA)에서 열릴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kcsbosto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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