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35 |
보스톤코리아 2016-06-20, 11:47:42 |
[이화랑은 위공魏公의 아들이다. 피부가 옥과 같이 부드럽고, 눈은 미소 짓는 꽃과 같고, 음률과 문장을 잘했다. 12살에 능히 모랑공의 부제가 되었다. 태후가 매우 사랑했다. 그 때 황화黃華, 숙명叔明, 송화松花 공주가 모두 공을 따라 배웠다. 공은 이에 숙명궁주와 정을 통할 수 있었다. 그 때 태후가 왕의 총애를 홀로 받게 하고자 모든 일을 공주에게 받들게 했는데, 왕은 동복의 누이인 관계로 사랑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공주 또한 그러했다. 공주의 아버지는 태종공苔宗公인데 그 때 상상上相으로 나라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신하였다. 왕은 그래서 공주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공주는 총애를 믿고 스스로 방탕했다. 태자를 낳고 왕후로 봉하여지자, 더욱 꺼림이 없었다.] 이화랑은 1세 풍월주를 지낸 위화랑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화랑세기의 저자인 김대문의 고조할아버지이다. 위화랑의 아버지는 염신공(섬신공)이며 어머니는 벽아부인이다. 벽아부인은 벽화부인의 어머니이다. 제21대 비처왕(소지왕)이 날이군에서 신라 제일의 미녀인 벽화를 데려올 때 그의 어머니도 같이 데려와서 후궁으로 삼았다. 이화랑은 어릴때 부터 시문詩文을 잘하는 영특한 미남자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화랑도花郞徒로서 갖추어야 할 무예 실력 역시 걸출하였다. 그래서 12살의 어린 나이에도 능히 화랑도의 2인자인 부제의 자리에 올라 그 임무를 다하고 3세 풍월주 모랑공이 일찍 죽으면서 그의 뒤를 이어 4세 풍월주가 되었다. 젊고 잘생기고 문무를 겸비한 이화랑은 풍월주가 되는데 손색이 없었으며, 낭도들 뿐만 아니라 궁궐의 많은 공주들도 그로 부터 배웠다. 특히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의 딸들인 숙명, 황화, 송화 등은 항상 가까이서 지내면서 시문과 화랑도花郞道를 배웠다. 숙명은 지소태후와 태종공(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황화와 송화는 지소태후와 영실공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지소태후는 삼촌인 입종과 결혼하여 진흥왕을 낳았고, 입종이 죽은 후 여러명의 남편을 두었으며 또한 많은 침신寢臣들도 있었다. 지소태후는 딸 숙명공주를 아들인 진흥왕의 비로 삼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진흥왕은 숙명공주와 동복남매인 관계로 왕비로 맞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으며 그녀를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 숙명공주 역시 그러하였다. 그래도 지소태후는 숙명을 왕비로 책봉했으며 그들 사이에서 정숙태자가 태어났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숙명을 왕비로 책봉한 기록이 없다). 정숙태자는 어릴때 죽었다. 그리고 사도왕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동륜이 태자가 되었으며, 동륜은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자주 풀려고 월담을 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그리고 나서 동륜의 동생 사륜이 진흥왕의 후계자가 되니, 그가 제25대 진지왕이다. 지소태후의 남편이며(남편 중의 한 명이며) 숙명의 아버지인 태종공은 이사부이다. 삼국사기(권44)의 열전에 보면 이사부異斯夫를 태종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사부는 지증왕6년에 실직주의 군주軍主가 되었고, 진흥왕2년에 병부령이 되었으며, 진흥왕6년에는 ‘국사’ 편찬을 왕에게 건의했고, 진흥왕23년에는 가야가 반기를 들자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 이 당시 태종공은 상대등上大等174) 으로 있으면서 국사國事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흥왕은 숙명공주를 왕비로 맞이하길 꺼렸고 사랑하지 않았지만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한편 숙명은 지소태후의 총애와 아버지 태종의 배경과 진흥왕의 묵인하에 스스로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진흥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그녀 또한 진흥왕을 사랑하지 않았다) 방황한 그녀는 결국 궁에서 도망쳐 나와 이화랑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원광과 보리 두 명의 아들과 화명, 옥명의 두 딸을 낳았다. 원광법사는 신라의 불교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대승大僧이고, 화랑도들의 수련계율인 ‘세속오계’를 남겼다. 그리고 보리는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이다. 화명과 옥명 두 딸들은 진평왕(제26대왕)의 후궁이 되었다. 174) 원문에는 상상上相이라고 나와있다. 정확한 뜻을 알 수 없으나 상대등일 거라고 본다. 삼국사기(권38)의 직관편(상)에 상대등을 상신上臣이라고도 불렀다고 나온다. 삼국사기에는 법흥왕18년(531년)에 이찬 철부哲夫가 상대등이 된 이후부터 진지왕 원년(576년)에 거칠부가 상대등이 되기까지 상대등 임명 기록이 없다. 따라서 이 사이에 이사부가 상대등이 되었고, 상상上相으로 표현된 것으로 본다(이종욱 역주해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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