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5. 네즈 페르세의 도주의 길 (2)
보스톤코리아  2016-06-06, 12:15:46 
네즈 페르세 인디언 부족 (계속)
네즈 페르세의 원래의 영역은 약 7만 km² 로서  남한 면적의 3분의 2보다 컸다. 그 땅 안에는 100개 이상의 마을이 있었으며 마을의 인구는 적게는 몇십 명에서 많게는 6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마을은 주로 고기잡이에 편리한 스네이크 강(Snake River)이나 새먼 강(Salmon River)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일 외에도 산에서 사슴이나 곰 같은 짐승들을 사냥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식물의 열매나 뿌리를 채취하여 식량을 조달하였다. 18세기 초반에 말이 네즈 페르세에게 전해지면서 말을 이용하여 로키산맥을 넘어 동쪽의 초원지대까지 진출하여 크로우(Crow)족 등과 어울려 들소 사냥도 하게 되었고 평원 인디언들로부터 티피(teepee)랑 트래보이(travois; 말이 끄는 삼각형의 썰매) 등의 생활문화를 받아들였다. 

앞에서 우리는 금이 인디언에게 안긴 재앙을 여러 번 보았다. 체로키족도 금이 발단이 되어서 눈물의 길을 따라 오클라호마로 쫓겨 갔고, 콜로라도에서 발견된 금 때문에 샤이엔족의 시련이 시작되었고, 또 블랙힐즈에서 발견된 금이 단초가 돼 카스터 부대가 몰살을 당한 리틀 빅혼 강 전투로 이어졌듯이 이곳 네즈페르세의 영역에서도 금이 발견되어 1860년부터 백인 이주자가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긴장이 조성되었다. 1855년에 네즈페르세와 백인간에 맺어진 조약은 네즈 페르세 인디언은 3만 km²의  영토를 보유하며 그 안에는 백인들이 들어와 살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었다. 

1863년 미국 정부는 백인 이주자들이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는 더 많은 땅을 인디언으로부터 양보 받기 위하여 조약을 준비하였다. 조약안에 따르면 인디언 거주지역은 기존 영토의 10분의 1 규모로 줄어들게 돼있었다. 네즈  페르세 인디언 중 주로 기독교로 개종한 지파들로부터는 조약안에 대한 동의를 받아냈으나 조셉(Joseph) 추장이 이끄는 웰라모트킨(Wellamotkin) 지파를 포함한 몇 지파들은 조약안 서명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약의 체결을 추진했던 사람들은 사실상 강탈한 거나 다름없는 네즈 페르세의 땅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인 것이라고 내무부의 인디언  담당국장에게 허위 보고를 하고 그 사실을 기정사실화했다. 사기를 동원하여 부족의 땅을 가로채간 사실에 크게 분개하여 조셉 추장은 그가 가지고 있던 성경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조셉 추장은 1839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여 일찍이 문명화의 길로 나서서 백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해 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제 그 꿈은 사라졌다. 그는 기독교를 버리고 전통적인 부족의 신앙으로 되돌아갔다.

조셉 지파가 살고 있던 왈로와(Wallowa)계곡에는 금이 발견되지 않은 탓인지 1870년까지는 백인 정착민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1871년부터는 백인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해에 조셉 추장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조셉이 추장을 물려받았다. 아버지 조셉은 아들 조셉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백인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겼다. 조셉 지파는 현재 살고 있는 오리건의 왈로와 땅을 내놓고 아이다호에 있는 라프와이 요새(Fort Lapwai)의 인디언 주거지역으로 옮겨가라는 압력을 6년간이나 버텨왔다. 1877년부터 그동안 네즈 페르세의 처지에 동정적이었던 이 지역 군사령관인 하워드 장군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파치 족과의 전쟁에서 코치스 추장을 포함한 인디언 게릴라 전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하워드도 군내에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마냥 인디언에게 잘해 줄 수만은 없었다. 이제 그도 군 지휘부의 명령을 철저히 따를 것을 결심하였다. 

또 하나의 긴 길(도주의 길)
1877년 5월 하워드는 이른바 ‘비조약 서명파’ 부족들에게 30일 이내에 현 주거지에서 철수하여 아이다호의 새 주거지역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 때까지 버티던 인디언들이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시한에 맞추어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떠나기 직전에 큰 사건이 터졌다. 젊은이들이 자기의 가족을 백인들이 살해한 데 대하여 복수하기 위하여 백인 네 명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네즈 페르세 인디언들은 그 동안 백인을 한 명도 살해한 적이 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번 사건으로 사정은 달라져 버렸다. 미군과 미국정부가 이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여 멀리 도망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로키 산맥을 넘어가서 크로우족 마을에 신세를 질 생각을 하였다. 이때부터 100여 일간의 눈물겨운 도주 행로가 시작되었다.  1877년 6월 17일에 있었던 화이트 버드 캐년 전투(Battle of White Bird Canyon)로부터 시작하여  10월 5일 베어스 포 마운틴 전투(Battle of Bear’s Paw Mountains)에서 항복하기까지 네 번의 큰 전투를 포함하여 총 18번의 교전이 있었으며 최소 120명의 네즈 페르세 인디언이 사망하고 미군 측에서는 180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을 입었다. 

네즈 페르세의 전사 숫자는 250명 수준이었는데, 이들을 잡기 위해서 동원된 미군의 규모는 2000명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5년 전에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옐로스톤을 관광중이던 셔먼 육군총사령관은 하워드는 물론이고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요새 병력을 총 동원하여 그들을 따라 잡으라고 특별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동원된 부대 중에는 그 전해에 카스터 부대가 몰살당했던 제7기병대도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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