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36회
보스톤코리아  2016-03-07, 11:52:37 
전화를 자주 하는 성격이 아니라, 때로는 상대방에게 무심함마저 안길 때가 있다. 잘 있겠거니, 바쁘려니 하다 보면 어느샌가 훌쩍 반년이 흘러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물어오는 안부에는 어찌 그리도 반가운지 이 이기적인 마음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의 출발이었던가. 여하튼 가까이에 어릴 적 친구가 하나 살고 있다. 친구는 남편과 함께 비지니스를 하는데 어찌나 바쁜지 만나기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 둘은 늘 서로 그 자리에서 있음을 알기에 보채거나 안달하지 않는다. 설령, 한 달이 지나고 서너 달이 지난다 할지라도 하는 일이 바쁜 게지 하고 그렇게 기다린다.

그래서일까. 나이 들어 사귀는 친구는 때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친구는 가끔 연락이 끊이지 않을 만큼에서 챙겨줘야 하고 안부를 물어야 하니 나 같은 성격의 소유자에게는 자유롭지 않아 불편하다. 그래서 만나면 웃음으로 화답하는 친구는 많아도 정작 친절하게 지내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나이가 하나둘 늘면서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편안해 좋다. 그래서 혼자서 보내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아마도 혼자 있을 때의 자유로움이란 경험해본 이들은 알 일이다. 둘이 있어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가려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면 더욱이 그렇다.

혼자 드라이브하며 다니길 좋아하는 편이라 혹여 누군가 급하게 라이드를 부탁한다면 내 시간이 허락되는 한 언제나 오케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정해진 곳을 계속 가야 하는데 카풀을 하자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 노우를 선택하는 편이다. 혼자라면 드라이브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하나의 명상과 같은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계절마다 느끼는 차창 밖의 자연은 나를 나로 바라보게 한다. 자연과 더불어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고 자연 속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를 만나며 그 속에서 작디작은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론 내게 안부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지나온 시간의 여정 속 안부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게 그 그리움의 숲에 들어 한참을 오랜 추억과 기억 사이에서 오가다 보면 저절로 안부에 마침표를 찍는다. 또다시 잘 있으려니, 좋은 일들로 바쁘려니 그렇게 마음을 다독거리며 안부를 접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오늘을 사는 디딤돌이 되며, 힘과 에너지가 되는가 싶다. 그래서 기다림을 배우게 되고 그 기다림을 통해서 나의 성숙을 발견하며 오늘을 꿋꿋하게 사는가 싶다. 오랜 그리움의 안부를 달래며 오늘도 또 하나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그리움을 쌓는가 싶다.

그리움은 내게 하늘이 주신 천형(天刑)같은 것이다. 그 그리움을 통해 해산의 고통을 느끼고 새 생명의 신비를 맛보는 그런 아주 특별한 선물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미칠 가슴이 계절마다 한 차례씩 찾아와 온몸을 뒤틀리게 하고 배 속의 창자를 휘저어 놓고 갈 것이다. 그런 고통이 없다면 어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있겠으며 아픔과 상처를 느낄 수 있을까. 그리움은 그래서 내게 영혼의 기도이기도 하다. 내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나를 내어놓는 시간이며 발가벗은 내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묵상(명상)의 시간이다.

안부가 그리운 날에는 내게 기도가 필요한 날이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세상임을 알기에 혼자 있어도 함께하는 것을 안 까닭이다. 자연을 통해서 기다림을 배우고 더불어 사는 이치를 배운다. 자연에게서 역행하지 않고 기다리는 순리를 배우는 까닭이다. 순리란 나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역행은 곧 욕심(탐욕)을 말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에게 해(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순리란 자연스러움이다. 살다 보면 삶 속에서 만나는 정들이 있다. 고운 정 미운 정 떨쳐버리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는,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정들 속 안부가 있다.

내게 있어 안부는 그리움이며 그 그리움은 기도이기도 하다. 그 누군가의 안부가 그리울 때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기도가 시작된다. 당장 귀에 듣는 목소리가 아닌, 그 사람을 깊이 떠올리며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안부가 궁금해 안달하거나 보채거나 하지 않는 기다림을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대상이 굳이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 어떤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다림을 배운 까닭에 그 어떤 일에 있어 걱정과 염려보다는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에 머문 평안함이 참 좋다. 그것이 그리움일지라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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