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규제법 및 선동 금지법 (1798): 그 법의 숨은 뜻
보스톤코리아  2016-02-29, 11:15:40 
권리장전
건국 직후인 18세기 말엽,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이슈로 권리장전 (Bill of Rights) 과 유럽과의 외교적 입장을 꼽고 싶다. 권리장전은1791년 미국 헌법의 첫 수정 조항으로 편입되는 10개 조항으로, 제헌의회에서 만들어진 헌법에 포함되지 않은 각 주와 개인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종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이 수정 헌법 제 1조로 자리 잡았다.

권리장전은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의회 직후, 제헌의회가 가결한 헌법을 비준하는 문제를 놓고 연방파 (Federalists)와 반연방파 (Anti-federalists) 간에 벌어진 격렬한 논쟁의 귀결이었다. 연방파가 주도한 제헌의회에서 탄생한 헌법 초안에 대해, 반연방파는 정치 권력이 과도하게 중앙정부로 집중되는 중앙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개인과 주의 권리를 명시하는 권리장전이 헌법의 일부로 포함되지 않는다면 헌법 초안을 비준할 수 없다고 맞섰던 것.

프랑스 혁명과 미국 정치
그런데 1789년 발생한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건국 초기 미국은 또다시 정치적 격랑에 휩싸였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프랑스에 공화정부가 탄생하자 공화제에 반대하는 유럽각국이 영국을 중심으로 대프랑스 동맹을 구축하고, 나폴레옹이 이끄는 유럽 정복 전쟁에 나서게 되면서 영국과 프랑스는 적대국이 되었다. 이 때, 연방당은 암묵적으로 친영의 입장을 민주공화당은 친프랑스의 입장을 개진했다. 민주공화당의 논리는 미국 독립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1776년 프랑스-미국 동맹 (Franco-American Alliance)에 의거, 영-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프랑스를 지원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영국과의 무역 통상이 중요한 북동부의 상업자본가들이 주요 지지층인 연방당으로서는 혁명 이후의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미국 동맹을 맺었던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이유를 내세워 중립을 지키고자했다.

당시 프랑스-영국 간의 고래 싸움에서 등이 터지는 신세가 된것은 유럽 해역을 지나는 미국의 상선들이었다. 특히 영국의 군함이 프랑스-미국간의 교역을 방해하기 위해 미국 상선을 공격하는 사건이 빈번했는데,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은 존 제이 (John Jay)를 파견하여 영-미간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으며, 그 결과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는) 제이 조약 (Jay’s Treaty)을 체결한다. 같은 시기 스페인 역시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스페인-미국간 영토 분쟁을 정리하고 미국과 스페인 식민지 간의 경계에 있는 미시시피 강에 미국의 항해권을 보장하는 강화조약인 핑크니 조약 (Pinckney’s Treaty)을 맺었다.

영국과의 제이 조약, 스페인과의 핑크니 조약을 맺은 미국에 대해 프랑스가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당연지사. 이에 1797년,  미국은 존 마샬 (John Marshall)과 토머스 핑크니 (Thomas Pinckney)를 프랑스에 특사로 파견하여,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꾀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외무장관 샤를 모리스 드 탈량과의 공식 회담을 요청한 미국측 대표에게 각각 이름 대신 X, Y, Z라는 가명을 내세운 대리인들이 공식 회담 성사와 협상을 댓가로 25만달러의 뇌물을 요구했다. 여기서 격노한 미국 특사들은 “방위를 위해서는 수백만 달러도 쓸 수 있지만, 조공으로는 단돈 1센트도 쓸 수 없다” (Millions for defense, but not one cent for tribute.)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제이와 핑크니는 국민 영웅이 되었으며, 반프랑스 정서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미국-프랑스 관계는 유사 전쟁 (Quasi War) 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선동금지법의 위헌성
사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전국적인 반프랑스 정서에 힘입어 연방당이 장악한 5대 의회는 외국인 규제법과 선동 금지법 (Alien and Sedition Acts, 1798)을 통과시키고 연방당 출신의 2대 대통령 존 아담스 (John Adams)가 이를 승인했다. 이민을 차단하고 ‘위협이 되는’ 외국인은 추방하는 외국인 규제법의 주요 타겟은 프랑스 이민자들이었다. 또한 선동금지법은 연방 정부에 대한 악의적인 혹은 그릇된 발언을 하는 국민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적 조치였다.

표면상 자국의 안녕과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제정된 외국인 규제법 및 선동 금지법의 속내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즉, 이 법안들의 실제 목적은 친프랑스 입장을 견지해왔던 민주공화당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고, 민주공화당의 집권당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노골적인 견제 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법을 근거로 추방당하거나 처벌받은 이들은 친공화파 인사들이었다. 또한 이 법에는 위헌적 요소가 있었다. 즉, 선동금지법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보기에 따라서는 수정헌법 10조가 명시한 중앙정부가 위임받은 권리를 넘어선 월권행위였기때문이다. 이후 제퍼슨을 당선시킨 1800년 선거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는 전쟁에 가까운 분열의 홍역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200년이 훌쩍 지난 오늘 대한민국에서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의장 직권상정될 상황을 마주한다. 테러방지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용상으로는 국정원의 (법으로 위임받은 권리를 넘어서) 국민의 사생활과 언론 출판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대한 위협조차 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위험한 법을, 헌법도 절차도 토론도 무시하고 밀어부치려는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소피아 선생님의 지난 칼럼은 mywiseprep.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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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macwolf
2016.03.07, 08:36:26
거꾸로 거꾸로 참 부끄럽다.....
IP : 137.xxx.2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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