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14 |
보스톤코리아 2016-01-18, 11:45:46 |
화랑세기에 의하면 사다함의 아버지는 구리지이고 할아버지는 비량공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벽화부인이며 벽화의 부모는 파로와 벽아이다. 이 사다함이 진흥왕 때의 뭇남자의 가슴을 설레게한 미실의 첫사랑이다. 사다함이 전쟁터로 출전을 할 때 미실이 사다함에게 들여준 노래가 바로 송사다함가(파랑가)인데 화랑세기 속에 전하는 우리의 향가 2수 가운데 하나이다. [위화랑의 얼굴은 백옥과 같고, 입술은 마치 붉은 연지와 같으며, 맑은 눈동자와 하얀 이를 가졌고, 말이 떨어지면 바람이 일었다. 벽아부인이 날이에 있을 때 딸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곧 비처왕의 후궁인 벽화부인이다. 벽화부인이 입궁하자, 위화랑은 동생으로서 왕궁에 출입하면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법흥대왕은 그 때 부군副君의 아들로 국공國公의 자리에 있었는데, 국공에 대한 소지왕의 총애가 위화랑에 미치지 못했다. 아시공이 이에 법흥대왕에게 권하여 위화랑에게 하배下拜를 하게 했다. 위화랑이 그것을 아버지 염신공에게 말했다. 염신공이 말하기를 “국공이 너에게 하배를 하는 것은 너를 신臣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왕(소지왕)이 늙었는데, 국공이 대망을 가지고 있다. 너는 그를 섬겨야 한다.” 했다. 위화랑은 이에 법흥을 찾아가 신하가 되어 섬기니, 많은 것이 국공의 뜻에 맞았다. 법흥이 말하기를 “나의 등통鄧通이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처왕毗處王(소지왕)이 죽었다. 지증대왕이 즉위하고 법흥을 태자로 삼았다.] 위화랑의 풍모와 화랑의 수장으로서의 용감한 지도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누이 벽화부인이 후궁(원문에는 비처후毗處后로 되어 있다)이 된 후 왕궁에 수시로 출입하여 왕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위화랑이 아버지 염신공의 배경보다는 누이 벽화의 힘이 더 컸다고 보여진다. 위의 화랑세기의 시대적인 배경이 서기500년 전후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소지왕이 벽화를 왕궁으로 데려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500년 11월에 죽었다. 그리고 부군副君은 문자적으로 ‘부임금’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소지왕의 6촌으로 왕위계승 서열에서 멀어져 있었던 지증이 부군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인 위치와 왕실내부 권력의 추를 가름할 수 있다. 또한 소지왕의 총신인 염신공이 국공(김원종, 후에 법흥왕)이 대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아들을 보고 그의 신하가 되어 섬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벌써 왕실내부 권력의 움직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염신공의 정치적 수완이나 권력의 부침浮沈에 따라 줄서기를 잘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왕에게만 신臣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조선시대나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뛰어 넘어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 뿐만 아니라 실로 다양한 관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즉 여타 집단의 우두머리에게도 쓰여지는 용어였으며, 임금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신私臣으로 쓰였다. 그리고 신하가 되기로 한 위화랑에게 법흥이 말하기를 “나의 등통이다”라고 했는데, 등통은 중국 한나라 문제의 총애를 받았던 신하이다. [위화랑은 벽화후에게 권하여 태자를 섬기도록 하여 딸을 낳으니, 바로 삼엽궁주이다. 그 때 태자비인 보도부인은 곧 비처왕의 딸인데 총애를 받지 못했다. 보도의 아우 오도는 묘심이 선혜후와 사통私通하여 낳았다. 그는 매우 아름다워서 태자의 총애를 받았다.] 서기500년11월에 소지왕(비처왕)이 죽고(죽임을 당하고?) 지증왕이 즉위하였다. 그리고 아들 김원종(후에 법흥왕)이 태자가 되고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김원종의 부인은 소지왕과 왕후(선혜후) 사이에서 태어난 보도부인保道夫人이었는데 왕위교체 사건으로 인하여 사이가 멀어진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말년에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날이군에서 데려온 벽화에게 빠져서 지냈던 소지왕을 지증왕(법흥왕의 아버지)파가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면서 일어난 사건이 원인이 된 것 같다. 이와 동시에 권력의 추에 따라 움직이던 위화랑은 누이에게 태자(법흥왕)를 섬기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삼엽궁주이다. 그리고 오도吾道는 보도의 동복 아우이다. 즉 어머니 선혜후가 묘심랑과 사사로이 정을 통하여 딸 오도를 낳았다. 물론 소지왕이 살아 있었을 때의 일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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