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27회
보스톤코리아  2015-12-28, 14:59:27 
귀밑머리 하나둘 하얗게 물들고 돋보기안경이 집안 여기저기에 하나둘 더 는다. 나이 든다는 것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것. 늙는다는 것 아니 늙어간다는 것 굳이 싫다 좋다가 아닌 그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이 아니던가. 그 나이 들어 가는 일이나 늙어가는 일에 발버둥 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잠시 멈칫 뒷걸음질 치거나 혹여 자신 있는 이는 도망치거나 뭐 별반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다,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랬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도 그 어른들이 걷던 길을 걷고 그렇게 그 길따라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온 후 처음으로 들르는 곳이 화장실이다. 물론, 바쁜 일과를 보는 일도 중요할 테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먼저 손을 씻은 후 이마와 눈 주위 그리고 입가 주위에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로션을 먼저 발라주고 그 위에 크림을 넉넉히 발라주는 것이다. 색조 화장은 잘하지 않는 편이고 피부 손질도 특별히 신경 써서 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니 산에 오를 일이 잦고 골프를 좋아하니 뙤약볕과 바깥바람에 얼굴이 상할 일이 많아졌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나름 방법을 찾은 것이 외출 후 집에 와서 버릇처럼 거울 앞에 서는 것이다.

이제는 거울 앞에 서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서운하거나 섭섭하지는 않다. 어쩌면 늙어간다는 느낌은 아직 아니라서 일게다. 어찌 됐든,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 밀어내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는 마음이면 족하지 않을까. 자기의 나이에 맞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맞이하고 보내는 삶이라면 그리 섭섭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이렇게 미루고 저렇게 미루다 보면 늘 아쉽고 미련이 남아 나중에는 그 아쉬움과 미련이 후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삶과 마주하며 누리는 인생이길 바란다.

젊은이들을 보면 내 심장 박동마저 빨라진다. 그들의 환한 웃음과 열정 그리고 활기찬 발걸음에서 그대로 젊음이 느껴진다. 부럽다, 그 젊음이 그 열정이 그 뜨거움이 말이다. 누군들 그 끓는 피의 그 시절이 없었겠는가마는 모두가 지난 것들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이 되지 않던가. 그 속에 기쁨과 행복이 있든, 아쉬움이 있든, 섭섭함이 있든, 후회가 있든 간에 누구에게나 지난 시간은 그리움으로 남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잠시나마 그들 속에서 내 지난 젊음의 시간을 잠시 꺼내보는 것이다. 정말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인생을 살까.

나이 들어간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그래도 뭔지 서운함이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젊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힘(에너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 에너지는 열정이고 불꽃이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며 다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열정과 정열의 에너지가 바로 '힘'이 아니던가. 그렇게 나이 들어가며 늙어가며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이 '힘(기운)'이 빠지는 일이다. 제아무리 아니라고 또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없다. 저절로 힘(기운)이 빠지는 일에 장사가 따로 있겠는가.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누구에게나 그 젊은 시절에 남은 빛바랜 추억만이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제일 현명한 사람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어가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들 시간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세월을 따라 걸어오신 연세 높으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그것은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실 게다. 나이 들고 늙어서 힘(에너지/기운)이 없어지면 떨어진 기력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힘'이 없어져 모든 기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덕'을 세우는 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 앞에서 늙은이의 힘 자랑을 할 것도 아니니 그저 정신 놓치기 전에 덕을 세우는 일에 남은 힘을 쓰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그 무엇 하나 있을까. 더욱이 '덕'을 세우는 일이야 어찌 쉬울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늙음을 미리 준비하고 받아들이며 무엇보다도 덕을 쌓는 일에 마음을 두고 싶어진다. 아직 젊은이들과 마주할 수 있는 열정의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더욱 마음을 갈고 닦아 '힘'보다는 '덕'을 세우는 일에 깊어지고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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