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10 회
보스톤코리아  2015-08-19, 12:15:16 
우리 집 막내 녀석과 우리 집 나이가 같다. 이 녀석이 6개월 되던 해에 집을 짓고 이사를 왔는데 이 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만 23살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이 집에서 산 지 벌써 23년을 맞고 있다. 세 아이의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숨결을 이루는 곳이며 우리 가족의 추억이 소중히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 아이 모두 집을 떠나 있어 덩그러니 우리 부부와 그리고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티노' 셋이서 이 집을 뜨문뜨문 들락거리는 공간이 되었다. 가끔 조용한 시간에 홀로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세 아이와의 아련한 추억이 머리와 가슴을 스쳐 오간다.

한 열흘 전부터 우리 집 바깥 페인트칠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네 미국인들의 집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자주 페인트칠을 하고 집을 가꾸는 편인데, 우리는 게으른 탓일까. 언제나 미국인들의 집보다 한 발짝씩 늦게 페인트칠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여하튼, 새로운 집 장단이 시작되었으니 뭔지 모를 마음이 수선스럽고 분주하기만 하다. 집의 바깥 페인트와 포치(Porch)를 새로 정리를 하기로 했기에 며칠 동안을 뚝딱거리며 못을 박아대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요즘 찜통처럼 푹푹 찌는 날씨에 밖에서 네 다섯 사람이 일하는데 집 안에서 그 모습을 내다보려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렇게 일하다 일기가 좋지 않으면 쉬고 다시 또 일을 시작하고 하더니 집의 바깥 페인트칠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고, 오늘은 포치를 마무리 짓고 있는 모양이다. 동네 어귀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우리 집을 오랜만에 쳐다보았다. 집 지붕과 잘 어울리는지 싶어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색상은 이 집 안주인인 내가 골랐는데 아이들과 카톡으로 서로 의논을 하니 모두가 좋다고 하기에 결정했던 색상이다. 바탕은 베이지 색상으로 하고 셔틀(Shutter)의 색상은 올리브그린으로 하였다. 사진으로 담아 세 아이에게 보내주니 모두 마음에 든다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페인트칠이 마무리되기 전에 혼자서 몇 시간은 속이 상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페인트 색상을 고르려고 홈디폿에 가서 한참을 이리저리 보고 또 보고 그렇게 결정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바탕 색상을 칠해 놓았는데 베이지 컬러가 내가 생각했던 색상보다 노랑빛이 더 도는 것이다.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한 부분 같아서 바꿔보기라도 하는데 이것은 집 전체를 다 칠해놓은 것을 바꿀 수도 없고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색상을 보고 또 몇 년을 더 살아야 한다니 더욱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를 탓할까. 그 색상을 고른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을 말이다. 집 밖의 페인트를 쳐다보던 내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였던지 일을 하던 사람들과 그들을 인솔하는 책임자가 묻는다. 색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생각보다 옐로빛이 더 돌아 마음이 좀 그렇다고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고른 색상이니 어찌하겠느냐고 답을 해주면서 웃음으로 언짢은 마음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고 죄가 있을까. 괜스레 엉뚱한 사람들에게 화살이 돌아갈 이 상황이 집 안으로 들어오며 더욱 민망스런 입장이 되고 말았다.

이번 집 밖의 페인트칠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샘플에 담긴 색상과 집 밖 전체에 칠해놓은 색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담긴 것을 바라볼 때와 큰 것에 담긴 것을 바라볼 때에 내 눈에 비친 색상이 다르게 보인 것뿐이다. 집 전체의 페인트 칠 후 색상을 놓고 고민했던 시간이 고마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삶 속에서 작은 것으로 전체를 판단하거나 결정해서는 더욱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에 머물러 있으면 그 한 가지 속에서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이다. 전체의 큰 그림으로 보아야 그것이 분명 무엇인지 제대로 정확히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때로는 이처럼 작거나 큰 일들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지 않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나 일과 일의 관계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빈번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서로 거리를 두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이해가 될 일도 코를 맞대고 얼굴을 마주하면 작은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조용히 지나갈 일도 수선스런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어떤 일이나 관계에서도 너무 지나치게 가까운 것은 서로에게 덕이 되기보다는 불편함을 줄 때가 더 많다. 이처럼 큰 그림으로 서로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이면 모두에게 덕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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