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3. 유럽인들의 정착촌 건설 (2)
보스톤코리아  2015-06-22, 11:46:18 
영국의 식민지 건설 추진
영국인들의 첫 식민지 건설은 1585년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해안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건설을 위하여 근방의 후보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원주민과의 마찰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원주민 마을을 불태우는 일도 발생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인디언들은 훗날 정착촌을 공격하게 된다. 1585년 8월17일 107명의 영국인들이 로아노크라는 작은 섬에 상륙하여 정착촌 건설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1587년 7월에 화이트(John White) 선장이 새로운 이민자들과 함께 로아노크를 다시 찾아와 보니 정착촌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이 배에 탔던  신규 이민자들을 로아노크 섬에 남겨 두고 곧 다시 보급품을 싣고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화이트 선장은 로아노크 섬을 떠났다. 그런데 당시 바다길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영국과 스페인과는 전쟁상태에 있었으며 해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어서 보급품을 싣고 항해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져 있었다. 화이트 선장은 몇 차례 로아노크로의 항해를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고 떠나온 지 3년이 지나 1590년 8월에야 겨우 로아노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현지에 남았던 90 명의 남자, 17 명의 여자, 11 명의 어린이들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착지 울타리 기둥에 ‘Croatan’이라는 글자만을 남겨두고 없어져 버린 이들의 행방은 오늘날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라진 식민지(Lost Colony)’라는 이름을 얻게 된 최초의 식민지 마을이 왜 사라졌는가에 대하여는 추측만 무성할 뿐 아직까지도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로아노크 정착촌 건설이 실패로 끝난 후 영국인들의 본격적인 정착촌 건설은 1607년 버지니아 주의 제임스타운에서 시작되었다. 한편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도 몇 개월 뒤에는  메인 주 Popham에서도 또 다른 식민지가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607년 5월 영국은 버지니아 주 체사피크만 제임스 강어귀에서 식민지 건설을 다시 시작하였다. 103명의 첫 이주민들은 여기서도 로아노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엄청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1609년부터 1610년까지의 대기근의 시기에 당시 인구 214 명중 60 명만 살아남았는데,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이들은 인육까지 먹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인들이 당초 정착지 위치를 정하면서 그 곳 원주민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원주민들의 거주지에서 멀고 식수나 농경 여건 등 비교적 조건이 좋지 않은 지역을 택하였다. 그러나 정착민의 수가 늘어나고 담배 경작 등에 사용할 더 넓은 농경지를 개발하기 위하여 인디언의 영역을 계속적으로 파고들어 오게 됨에 따라 양측 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영국 버지니아 식민지 이주민과의 충돌
제임스타운 인근에는 포우하탄(Powhatan) 연맹에 속한 원주민이 약 14천 명이 이미 살고 있었다. 1609년에 영국인이 인디언에게 식량을 강제로 요구함에 따라 양측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영국 정착민은 1609년부터 가뭄으로 인한 흉작과 본국으로부터의 보급두절에 따른 식량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게 되어 원주민들과의 식량교역이 절실하였으나 인디언 역시 그 해 작황 부진으로 영국인들에게 식량을 내어줄 형편이 못되었다. 영국인들이 무력으로 식량 강탈을 시도함에 따라 양측 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고 급기야는 1610년 8월 9일 70명의  영국군이 인디언 마을을 급습하여 약 70명의 원주민을 살해하고 가옥을 불태움에 따라 양측의 갈등은 전쟁국면으로 확대되었다. 

역사에서는 이 전쟁을 ‘Anglo Powhatan’ 전쟁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앞으로 치르게 될 수많은 인디언 전쟁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쟁은 1614년 추장의 딸인 포카혼타스(Pocahontas)가 영국인들에게 납치되면서 양측 간의 적대행위가 끝나게 된다. 포카혼타스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롤프(John Rolfe)라는 영국인과 다시 결혼하여 런던으로 갔었는데, 거기서 1617 년에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2세에 불과하였다. 그녀와 롤프 사이에 난 후손들은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영국인들은 더 많은 차지하게  되었으며 Powhatan 연맹에 속했던 일부 부족들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포우하탄 연맹과 영국 정착민과의 두 번째 전쟁은 1622년부터 1632년까지 10년간 계속되었다. 인디언들은 영국인들을 완전히 내쫓을 목적으로 대규모 학살사건을 일으켰다. 모피 등의 물품을 교역하기 위한 모임으로 위장하여 많은  영국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다음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살해함으로써 긴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날의 기습공격으로  당시 정착민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47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신영의 세상 스케치 503회 2015.06.22
새벽 울음이여!
한담객설閑談客說: 소나기 2015.06.22
  빗방울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나기가 쏟아졌다. 시작은 소나기였는데 쏟아 붓던 비는 잦아들었다. 오락가락 내리는둥 마는둥 한동안 계속되었..
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3. 유럽인들의 정착촌 건설 (2) 2015.06.22
영국의 식민지 건설 추진영국인들의 첫 식민지 건설은 1585년 지금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해안에서 시작되었다. 식민지건설을 위하여 근방의 후보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86 2015.06.22
무덕관 황기와 수박도
'설마 우리 아이가?' - 김정윤 가족의 치유를 기원하며 - 2015.06.22
양미아의 심리치료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