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 상감 유리 구슬과 로마 유리 그릇 |
보스톤코리아 2015-01-19, 11:44:36 |
1973년 경주 종합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신라 미추왕릉이 있는 지역을 정화해서 대릉원이라는 신라 김씨 고분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대릉원이 생겨나게 됐는데 여기에 있는 20여개의 거대 고분들은 AD4~6세기 간에 생존했던 김씨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들의 무덤이었다. 대릉원 주변(미추왕릉 지구)에는 수많은 폐고분이 적석 목곽분 형태로 잔재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4호 고분은 신라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되었는데 유물 중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비로운 유리 구슬이 발견되었는데 사람과 오리, 꽃 등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정교하게 상감되어 있었다(보물 634호). 함께 발굴된 유물로는 특이한 모습의 서수형 토기(보물636호)가 나왔는데 이 토기는 거북이의 몸통과 용의 머리와 꼬리를 지니고 잔등이에 권력의 상징인 동복을 지니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신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인물상의 얼굴 바탕은 백색이고, 눈, 눈썹, 코, 귀는 청색이고 입술은 빨간색이었다. 한 눈에 유럽인의 모습이었다. 인물 둘레에는 청색 바탕에 백색으로 된 오리 모양의 새와 황색, 백색 등의 꽃이 있었다. 이전에도 금관총, 천마총에서 상감 유리 구슬이 출토되었는데 이 구슬들은 감청색 바탕에 불규칙한 백색, 황색 반점이 상감된 구슬들로 미추왕 지구 4호 고분에서 발굴된 유리 구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둥근 유리 구슬 속에 모자이크 기법으로 유럽풍의 인물이 정교하게 상감되어 있는 신라 유리 구슬이 세계 학회에 보고되자 즉각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신라에서 만들어진 유리 구슬이 아니라는 점에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도대체 상감된 인물은 누구일까? 도대체 어디서 보내온 구슬인가? 등등의 의문이 이어지게 되었다. 신라 고대 유물의 대가 요시미츠 츠네오 교수는 상감된 인물이 로마 교황이라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그렇다면 이 유리 구슬은 로마나 유럽에서 온 것인가? 학자들은 신라의 장식보검이나 각배를 비롯해 황남대총, 천마총, 서봉총, 금령총에서 발굴된 로마식 유리 그릇들이 중앙 아시아나 지중해 지역에서 온 것 처럼 상감 유리 구슬도 4~6세기 때 같은 지역에서 온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었다. 이 구슬의 공식 명칭은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 구슬”이고 세계 고고학계에서는 “신라인면 유리 구슬”로 부르게 되었다. 신라 인면 유리 구슬에 관한 연구는 영국 런던대학교 고고학 연구소 선임 연구원 제임스 랭턴 박사가 신비스런 이 구슬의 출생지를 추적하면서 여러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랭턴 박사는 이 구슬이 경주 대릉원 인근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에 대릉원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형 유리병(국보193호)이나, 금령총의 점박이 유리잔, 천마총의 거북 등 문양의 유리잔이 만들어진 곳과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로마 제국 유리 문명의 본고장 예루살렘으로 첫 탐사를 시작하였다. AD1세기에 이스라엘에서 개발한 대롱불기법 유리제품 생간 기법이 지중해 연안의 로마 제국 영토로 확산되면서 유리 제품이 다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쇄브론에서 황남대총에서 나온 봉수형 유리병과 같은 모양의 오에노코에 유리병이 1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오이노코에는 로마 귀족들이 포도주병으로 사용하던 용기였다. 히브류 대학 고고학 연구소 루스 잭슨탈 교수는 신라 봉수형 유리병 사진을 보고 로마 제국 4~5세기의 유물로 진단하면서 금령총의 점박이 유리잔이나 천마총의 거북등 모양의 유리잔도 로마산으로 인정하였다.
이스라엘 유리 구슬은 평면적인 도형에 가까웠고, 하나같이 아몬드형 눈동자에, 코는 돼지 코, 입은 한 일자로 꾹 다문 모습에 네모난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라 인면 구슬과는 아주 다른 얼굴이었다. 신라 상감 구슬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랭턴 박사는 지중해 연안 제국을 비롯한 7개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신라 인면 상감 유리 구슬의 출생지를 탐문하다가 의외의 곳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잡게 되었다. 뉴욕 코닝 유리 박물관 서고에 인도네시아 유리 구슬을 다룬 책이 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신라 구슬과 똑같은 모습, 똑같은 제작 양식을 적용한 인면 상감 유리 구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실제로 그는 아리조나에서 얼굴 표정이 약간씩 다른 4개의 인물상에 5마리의 새가 상감된 유리 구슬을 접하게 되었다. 이들 인물상은 신라의 것과 쌍둥이처럼 닮았었다. 샌디에고 박물관에서 그는 신라구슬과 제작기법은 물론 모자이크 문양까지 똑같은 유리구슬을 찾아냈었다. 이 구슬의 이름은 자바티무르(동자바)라는 구슬이었다. 이 구슬의 제작지는 인도네시아 자바 동쪽의 젬버 지역이었다. 젬버를 방문한 랭턴 박사가 이 마을 공방에 신라 인면 상감 유리 구슬 사진을 보여주며 제작을 요청한 바 장인은 23시간 만에 비슷한 모양의 구슬을 만들어내었다. 랭턴 박사는 자카르타의 한 불교 사찰 법당 앞 월장석 바닥에 부처의 일대기가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해탈을 의미하는 새, 함사(Hamsa)와 미륵불이 올 것을 암시하는 용화수 나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유리 구슬에 그려진 새와 나무가 함사와 용화수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랭턴 박사의 집념에 가득찬 탐사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첫째는 일찍이 5~6세기 경에 신라와 인도네시아 자바 사이에 해로를 통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대릉원 거대 고분에서 발굴된 로마식 유리 그릇은 4~5세기 때 로마 제국에서 신라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백제 유물 중에 로마식 유리 그릇이 없는 것은 연구가 필요한 사항이다. 필자주: 랭턴 박사 이야기는 KBS에서 방영된 내용을 많이 참조하였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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