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60
보스톤코리아  2014-12-15, 12:01:18 
망국의 기로에 선 조선의 무예(3) – 영민한 정조가 사망하면서 무예도 그 기운을 함께 잃어 갔다. 조선 말기로 들어 와서 무예는 일반 백성 중심의 유희와 오락으로 변천되었다. 물론 무예의 정통성 보존을 위하여 은둔하여 수련한 많은 무도인들이 있었다. 다만 은둔으로 인하여 정사正史에서 멀어졌고 야사와 구전으로 전해지는 무예의 이야기는 때로는 침소봉대되어 현실성이 떨어질 때도 있다. 

조선 말기에는 일반백성들이 즐기는 유희가 여러가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수박은 각저와 널뛰기, 연날리기, 활쏘기 등과 함께 오락과 유희로서 전 백성들이 즐겼으며, 수박과 죽마, 재기차기는 어린아이들도 많이하였다. 순조대에 그려진 유숙劉淑의 ‘대쾌도大快圖’에 당시 무예의 실상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에는 씨름과 수박을 하는 모습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또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된 시기인 18세기 말에 백과사전류로 편찬된 ‘재물보才物譜’에 무예를 칭하는 용어가 다수 나온다. 즉 변卞, 수박, 탁견, 시박, 슈벽 등이며, 이들을 기술상으로 보면 수박(변은 수박과 같고), 시박(씨름의 일종), 슈벽 등 크게 세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수박은 다만 군사를 훈련하고 단련시키는 군사적인 용도로만 쓰인게 아니라 현재의 레저(Leisure)나 사회체육 활동처럼 변천되었다. 또한 시대가 흐름에 따라 문무文武 양반들만이 향유하지 않고 일반백성들을 포함한 여러 계층에서 호신용으로 수련하고 오락적으로도 즐기게 되었다. 고려시대 부터 사용하여 온 수박이란 용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사서에서는 사라지고 중국의 영향을 받은 권법이란 용어가 대체되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우리의 수박이란 용어가 계속 전해 내려오다가 훗날 변, 수박, 시박, 슈벽 등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이며, 기예상의 동작도 많이 발전되었거나 변화되었다고 본다. 모든 문화가 변모하듯 수박 역시 국방의 수단과 왕실의 의전과 연회에서 쓰였다가 개인의 심신수련용의 용도로의 변화도 있었고 말기에 접어들어서는 나라안의 온 백성들이 모두다 즐기는 오락과 유희를 넘어 또 다른 형태의 ‘민속놀이’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일부의 참 무예인들은 정통무예의 가치와 그 기예를 보존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불행히도 원형의 전승은 끊겼지만 다행히 사라져가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복원하여 조상의 얼을 후대에 전해 주려고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수련하는 무예인들이 다수있다. 권법은 택견과 다른 무술이 아니고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조대 이전 까지는 수박, 수박희가 무예용어의 주류였다. 그 후 수박이란 용어는 실록에서 사라지고 권법이 등장한다. 아마 중국과의 많은 무예 교류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그러다가 정조대를 지나면서 택견 등의 용어가 실록에 등장한다.  

택견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무예 중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일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예이다. 이렇게 귀중한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가 일제강점기를 맞아 사라질뻔 했다. 구한말 구식군대의 해체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우리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잃었다. 그 중 하나가 전통무예이다. 즉 개화기에는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외래무예가 유입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규제와 탄압으로 택견이나 수박같은 우리 고유의 무예 수련은 엄격히 제한되었다.96)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24반의 무예, 즉 유일한 맨손무예인 권법과 창술, 검술 등 땅에서 하는 지상무예18기와 기창과 격구 등 말을 타고 기병들이 하는 마상무예 가운데서 원형이 보존되어 전하는 무예는 거의 없다. 이 권법은 택견이란 이름으로 전하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은둔을 하게되었고, 일본의 무술인 가라데가 유입되어서 우라나라 사회에는 가라데가 모든 무술을 대표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당수도唐手道, 공수도空手道 등의 용어로도 불리었다. 물론 당수나 공수는 가라데의 한자표기로 같은 뜻이며 같은 무술이다. 오끼나와에서 일본 본토로 무술이 전해지기 전에는 당수로 표기하였다. 중국에서 전래되었기에 ‘당나라 무술’이라고 당수로 표기했으며, 가라데라고 불렀다.(당나라 시대에 전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본토로 전래된 후에는 공수로 표기했으며 역시 같은 음音이다. 일본어는 음독音讀을 하는 우리말과 달리 훈독訓讀을 하기 때문에 당수나 공수나 모두 가라데로 읽는다. 그후 화수도, 태수도 등의 용어로 불리다가, 1955년 부터 ‘태권도’라고 불렀다. 이는 태권도라는 무술이 새로 창작되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존재하여 수련하던 태수도를 단지 개명하였다.(당수도, 공수도 등도 포함될 수 있다)       

96) 국기원(세계태권도본부) 태권도 역사의 일부 인용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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