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과 신라, 가야의 친연성 (1) |
보스톤코리아 2014-11-24, 13:34:23 |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엄청나게 넓은 땅을 자신의 영토로 만든 3명의 정복자가 있다. 첫 번째 사람은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징기스칸에 이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두 번째는 희랍에서 이집트, 인도까지 점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이다. 세 번째 사람은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4세기 말에, 흑해 북부, 우크라이나에서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전유럽을 석권한 훈(Hun) 족의 왕 아틸라(Attila 395-453)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정복한 영토는 남쪽으로 도나우 강에서 북으로는 발틱해까지, 동쪽은 우랄 산맥에서 서쪽으로는 알프스, 프랑스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아우르고 있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그에게 항복하고, 너무나 버거운 조공을 바치다가 결국은 국력이 쇠진되어 멸망하게 되었고, 서로마 제국도 아틸라에게 밀라노(Milano)를 빼앗기고 국력이 다해 망했으니, 아틸라가 정복한 영토는 유럽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아틸라가 서로마 제국에 남긴 피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틸라의 말이 밟고 지나간 땅에서는 풀조차 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잔인하였고 전유럽을 공포로 가득차게 하였다. 훈족이 이탈리아 반도 북쪽 아드리아 해역에 있는 베네치아로 쳐들어 오자 사람들은 근처의 섬으로 도주했다. 훈족을 피해 섬으로 달아난 사람들은 다시 본토로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여러 작은 섬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선을 주식으로 하고 소금을 만들어 무역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작은 섬들이 지금의 수상도시 베니스로, 아틸라가 무서워 도망친 사람들이 만든 도시인 것이다. AD375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시작하여 동고트, 서고트 왕국을 침공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야기시킨 훈족의 유럽 침공은 비록 100여년만에 끝을 보지만 유럽의 두 강대국인 서로마,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재촉하게 되었다. 훈족은 절대강자였다. 또 무서움의 실체였다. 훈족이 유럽을 석권하고 1,500년이 지났지만 유럽의 사가들은 그들을 공포로 떨게 만든 훈족을 비하하는 편견과 경멸에 찬 적대감으로 훈족을 바라보고 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신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벌주기 위해 잔인한 훈족을 내려 보낸 것으로 비하하였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암미아누스는 훈족의 생김새를 표현하기를 “그들은 어렸을 때 얼굴에 깊은 상처를 내어 어른이 된 다음에도 털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하였다. 강인한 팔마디에 굵은 목을 지니고 흉측한 형상이 두 다리로 걷는 짐승처럼 보였다”고 표현했다. 훈족을 직접 만나본 클레르몽의 주교 시도니우스 아포리 나리스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들은 혐오감을 준다. 그들의 코는 모양이 없고 평평하며, 광대뼈는 튀어 나왔다. 두 개의 눈에는 눈꺼풀이 조그맣게 열려 있어서 광선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고 표현했다. 고트 왕국의 역사가 요르다네스는 아틸라의 외모를 “그는 키가 작고 가슴이 넓으며 그 위로 거대한 머리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회색빛 눈동자, 납작한 코, 새까만 피부를 지니고 있다”고 표현했다. 훈족과 그들의 전신으로 생각하는 흉노족은 문자가 없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훈족이나 흉노의 침략을 받은 사람들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표현은 공평하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절제 없는 과장이 많고 훈족에 대해 나쁜 인상을 남기려고 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유럽 사람들의 훈족에 대한 평가 역시 공평한 평가가 아니었다.
같은 동양 사람인 한나라 때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도 은연중에 흉노를 비하하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신체는 작지만 땅땅한 편이며, 머리는 아주 크고 둥글며 안면은 넓고 광대뼈가 튀어 나왔다. 눈썹은 짙고 눈동자는 불타듯이 강렬하며 눈은 째진 모양이다.” 같은 동양사람도 흉노에 대한 편견이 많았는데 서양사람들이 편견이 없었을리 만무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훈족의 원류는 아시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아시아 유목민들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어느 민족이 원류인가? 에가미 나미오 동경대학 교수는 한때 훈의 세력권이었던 볼가강 유역에서 판노니아(헝가리) 평원에 걸쳐 흉노식 유물이 광범위하게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아시아의 흉노족이 서진하여 훈족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훈족들이 서방으로 진출할 때 알타이 지역을 지나 아랄해와 카르파티아 초원 지대를 지났는데 이들 경로에 대소형 동복(銅鍑)이 30여 개가 발견되었다. 동복은 흉노를 상징하는 유물이었다. 원래 동복은 스키타이, 흉노족들이 말 등에 싣고 다니며 취사나 제사 도구로 사용했는데 흉노 수장의 상징물로, 수장이 사망하면 사용하던 동복을 다음 수장이 물려받곤 하였다. 동복은 스키타이 식과 흉노 식 두 가지가 있다. 스키타이 식 동복은 반구형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흉노 식은 솔모양으로 때로는 화려한 장식이 치장되기도 한다. 흉노 식 동복은 황하상류 내몽고 오르도스 지방에서 다수 발견되었고, 몽골의 노인울라(Noin Ula) 고분군, 알타이 산맥, 우크라이나 볼가강 유역, 돈강 유역, 헝가리 등에서 발견되었고 만주의 길림성에서도 발견되었다. 유럽에서 발견되는 동복이 몽골, 오르도스 지역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훈족의 원류가 흉노계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동복이 출토된 지역은 예전에 흉노, 선비족의 거주 지역이었다. 그런데 평양 석암리 219호분, 토성동 486호분에서도 동복이 발견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김해 대성동 29, 47호분과 양동리 235호분에서도 동복이 출토된 것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금관가야 왕족의 묘로 확인되고 있다. 출토 유물로 왕의 위세품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해에서 발굴된 3개의 동복으로 인해 세계의 고고학자들은 훈족과 가야, 신라의 친연성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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