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y Hollow의 세 현자(賢者) (2)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5:42:16 
2014-10-10

Sleepy Hollow의 세 현자(賢者) (2)

(지난 호에 이어)
호손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이름이다. 그의 대표적 단편소설인 ‘큰바위얼굴(The Gteat Stone Face)’을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바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배경이 된 바위(Old Man of the Mountain)는 뉴햄프셔주 캐논산(Cannon Mountain)에 있었는데, 2003년도에 자연적인 붕괴로 인하여 얼굴 모습의 바위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호손은 이 밖에도 수 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는데, 호손이야말로 단편소설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고 찬사를 받고 있다.

호손의 최고 걸작은 역시 ‘주홍글씨’이다. 주홍글씨는 지금도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고전소설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주홍글씨의 출간으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문학적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하여 호손을 미국 문학의 효시로 존경하고 있다. 호손은 이 소설을 통해서 청교도의 위선적인 행태에 대하여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청교도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은 집안 내력과 관련이 있었다. 17세기 말 악명 높은 ‘세일럼 마녀 재판’을 맡은 판사 중에는 호손의 조상(William Hathorne)이 있었다. 당시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멋진 신앙 공동체를 세우려던 이민자들은 오히려 15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이거나 잡아들이는 과오를 범했다. 뿐만 아니라 그 조상은 원주민에 대한 박해에도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고 한다. 호손은 이 사실을 두고두고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조상에 대한 반발 심리로 원래의 Hathorne에서 w를 추가하여 Hawthorne으로 성까지 바꾸었다. 작가는 작품속 간통의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도 간통은 떳떳한 행위가 아니고, 작품의 방향성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일부에서는 “청교도들의 순수성이 왜곡돼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호손은 이 작품에서 청교도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던 초기 식민지 시절에 이미 청교도 목사가 간음을 범하는 등 위선적인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다. 청교도 사회의 엄격한 규율을 설파하는 목사가 바로 이를 무너뜨린 죄인으로 등장하는데, 그 처벌도 유럽 중세의 마녀재판을 방불케 한다. 17세기 중엽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들은 유럽의 종교 광신자들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호손은 생각했다. 호손의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주인공 헤스터 프린이 청교도적 단죄인 주홍글씨를 버려도 될 상황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달았고 다시 되돌아와서도 ‘A’를 다는 장면일 것이다. 그때, ‘A’의 의미는 간통(Adultery)에서 능력(Ability), 사랑(Amour), 심지어 천사(Angel)로 변모된다고 비평가들은 해석한다.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세 사람 중 가장 늦게 1817년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바드 재학시절을 빼고는 줄곳 콩코드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하바드에서 처음으로 에머슨을 만난 이후 에머슨에게 푹 빠지게 된다. 말하자면 소로는 에머슨을 멘토로 삼았으며, 에머슨 역시 소로의 스승이자 친구로서 소로를 끔직이 사랑했다. 에머슨은 소로에게 집안관리자의 직책을 주어 경제적 걱정 없이 항상 에머슨 옆에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였다.


  

소로는 그의 세계적인 유산인 ‘월든(Walden)’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 책이 국내에서 열 개도 넘는 출판사들이 각자 번역본을 출판하여 경쟁을 벌인 것만 봐도 높은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 책이 그토록 인기를 얻게 된 데에는 ‘법정스님이 사랑한 50 권의 책’ 중에 월든이 제일 먼저 소개된 점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사상은 소로 한테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생전에 월든호수도 세 번이나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로의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은 인도의 간디를 포함하여 수없이 많다.

소로는 에머슨의 초절주의와 자연주의 철학을 몸소 실천에 옮겼다. 인생에서 실험을 높이 평가했던 에머슨의 가르침에 따라 2년여의 숲속 움막생활을 통하여 자연을 관찰하고 철학적 사유의 시간을 뼛속 깊이 경험하면서 후세에게 귀감이 될 큰 유산을 남기게 된다. 소로의 한 칸짜리 오두막에 있는 살림살이라면 침대와 탁자, 책상, 그리고 우정을 위한 의자 세 개가 전부였다. 그는 그곳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자연을 관찰하며, 저녁이면 책을 읽고, 우주의 더 높은 법칙들에 대해 사색했다. 때때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에머슨, 호손, 채닝(William Ellery Channing)과  같은 이들과 우정을 만끽했다. 그의 삶은 관찰자로서 사색가로서 그리고 자연예찬자로서 자연과 환경, 지리, 경제, 역사 전반에 대한 탐색과 사색으로 가득 채워진 것이었다. 그의 기록은 여러 자연의 소리들, 고독, 호수, 농장, 동물들, 난방, 과거의 거주자들과 방문객들, 사계절에 따른 변화 등에서부터 기독교와 불교, 유교, 힌두교 등의 고대 경전까지 그리스로마 신화와 전설, 철학 등 방대한 양의 동서양 고전을 넘나드는 소로의 깊은 사유를 통해 구현되었다. 19세기에 쓰인 이 책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끊임없는 불안과 근심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상향으로서 빛을 발하는 있으며, 특히 무한경쟁의 산업사회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힐링의 방편이 되어 주고 있다.

보스턴 시내 하바드의대 부속병원인 MGH 뒤쪽에서 North Station으로 나가는 방향으로 ‘소로 오솔길(Toreau Path)’이 조성돼 있다.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이 길을 걸으며 소로 생각에 잠겨 보면 작은 위안이 될 법하다.

다시 Sleepy Hollow 묘지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이 묘지는 1855년 초절주의자가 중심이 되어서 조성되었는데, 초절주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준공기념식에서 에머슨은 기념사를 했으며 채닝은 그의 시 ‘Sleepy Hollow’를 낭송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소로도 이 기념식에 참석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호손은 리버풀 영사로 영국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참석치 못하였을 것 같다. 에머슨, 호손, 소로 세 사람은 이제 월든 호숫가 소로의 오두막을 떠나 이곳 작가의 언덕(Authors’ Ridge)에서도 교유를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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