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칠월은
보스톤코리아  2014-11-04, 10:56:13 
2014-07-25   

 가마솥, 한증막, 불볕, 살인더위 등등. 귀에 익지 않는가. 신문마다 한 여름이면 쓰던 과장스런 단어들이다. 호들갑이라 해야 할진대, 올해는 한국에서도 아직은 이런 말을 쓰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한 두어주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보스톤은 오르락 내리락하는가 싶다. 

  칠월에 대서大暑즈음이다. 말그대로 한국에선 가장 무더운 시절이다. 보스톤에선 소나기를 동반했던 광풍이 자주 휩쓸고 지나갔다. 폭풍은 세월호 참사에, 월드컵에, 인사청문회 참담함에 두세차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많은 일이 파죽지세에 직렬로 연속해서 힘있게 밀고 쳐들어왔던 거다. 칠월에 더위에는 견딜 수 없었던가. 이제 북동쪽으로 고개를 돌려 올라가더니 자연소멸된듯 하다. 남동쪽에서 해마다 습격하는 스톰이던가. 다음은 얼마나 강력한 비바람이 허술한 경계망을 엿보는지 그건 무섭다. 올해에는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올해에 먹어야 할 것을 이미 먹을만큼 다 먹었다는 소리다. 견딜 만큼 견뎠다.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뒤라 해야겠다. 한껏 무겁고 습기찬 공기에 짓눌렸는데, 세찬 비가  찜통을 짊어지고 달아났다. 임계점에 이르면, 팽만한 물공기가 소나기되어 내렸다는 말이다.  시원하고 맑은 한여름의 공기에 숨쉴만 하다. 덕택에 텅빈 진공인데, 서늘한 진공이다. 대신 오후의 햇볕이 따가워져, 달라붙고, 눌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한점 없으니 햇볕도 날리지 않아 그대로 꽂히고 있다. 날카롭기가 면도날과 같다. 벼가 무럭무럭 익어가는 햇볕인게다. 고마운 일이다.

 이육사는 맑디 맑고 시원한 7월을 노래했는데, 보스톤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세월이 흠뻑 흘렀고, 고향과 사뭇 거리가 멀어 그런가?  그래도 청포도알은 청량해 보인다. 이육사 선생 청포도다. 하이야 모시와 극명한 조화가 청포도와 함께 한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청포도)

  칠월은 참 용감하기도 하다. 적막이라 해야 할겐가. 아 바쁘고 소란스런 세상에 이만큼 고요한 시간도 없지 싶다.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니 그런가. 개미새끼 한마리 어른거리지 않는바. 개미야 이 시간에도 일할 테지만, 과장법 심한 인간들은 개미가 더운 날을 피해 낮잠자고 있다고 말했다. 개미가 억울할 법도 하다.  너무 짙어 눈시린 나무그늘이 예각銳角을 던지는 한 여름 우리집 앞마당이다. 햇빛이 강렬한 만큼 그 그늘도 날카롭다는 말이다. 개미도 눈이 너무 부셔 제집으로 달아나 숨을까 싶다. 

  한창 바캉스 가는 시절이다. 한국엔 방학이 시작 될테고 모두 찜통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달려가는 거다. 집안에 남아 있는 이들이야 ‘뭔 재미있는 일 없나?’ 심심해 할 시간이고, 한가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찬물에 밥 말아 오이지와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점심으로 먹으면 기막힐 시절이다. 갑작스레 졸음이 온다. 배부르고, 마루바닥이 서늘해 그런가 보다. 

제목대로 객적고 한가로운 소리를 읊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요한 15: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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