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뿌리 (4) >
보스톤코리아  2014-11-03, 16:03:48 
문무왕 비문. 경주 박물관에 소장
문무왕 비문. 경주 박물관에 소장
2014-07-18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1) 문무왕 비문 (1)

신라 제30대 문무왕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20만 당나라 군사를 한반도에서 축출한 임금이다. 비록 삼국통일의 대업은 완수했지만 우리 민족의 발원지, 광활한 만주벌판을 상실한 회한을 후세에 남겨준 임금이기도 하다.

죽음에 즈음하여서는 사후에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겠다고 자신을 화장하여 바다에 무덤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 지금 경상북도 경주 양북면 봉길리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 그를 장사 지낸 해중릉이다.

 경주 양북면 봉길리 감포 대왕암 해중릉경주 양북면 봉길리 감포 대왕암 해중릉


그의 묘비는 사천왕사지에 세워졌는데(AD 682) 비문에 쓰여진 내용이 우리에게는 전혀 뜻밖이고 생소한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비문은 부왕 태종무열왕(김춘추)과 자신의 치적, 백제 평정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 임금으로 응당 기록되어야 할 사실들이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눈을 끄는 의외의 사실이 적혀있다. 신라왕족 경주 김씨(신라 김씨)의 혈통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신라 왕족 경주 김씨의 뿌리는 북방 유목 민족 흉노의 왕자 1)투후(秺候) 김일제(金日磾)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기로는 AD 65년에 태어난 김알지(金閼智)가 신라 김씨의 시조로 알고 있었다. 문무왕 묘비는 김알지를 170년이나 뛰어넘어 흉노의 왕자 김일제(BC 134 - BC 86)에게 그 뿌리를 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와 흉노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지난 4년동안 문무왕 묘비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신라는 물론이고 같은 문화권인 가야의 문화, 유물, 유적, 언어에서 흉노의 흔적을 찾아보고 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관심 밖의 일이지만 필자는 4가지 사항이 동기가 되어 금번 역사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번째 동기는 물론 흉노왕자 김일제가 신라 김씨(경주 김씨)의 시조라는 문무왕 묘비 기록이었다.
두번째 동기는 근래 한국 의학계에 불고 있는 민족의 뿌리 찾기 유전자 연구 과정에서 북방 유목민족인 몽골 사람들의 DNA염기 서열이 한국인과 비슷하다는 연구사실이었다. 중국인보다도 몽골인들이 한국인과 가깝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독일의 의사들이 수천년이 된 이집트 미이라의 40%이상의 결핵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유전자 연구로 알아냈다. 런던 대학은 2600년전에 사망한 미이라의 사망원인을 이처럼 밝혀내고 있다.
유전자 연구는 종래에는 추정으로만 그치던 역사적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감숙성 무위시에 있는 김일제 석상감숙성 무위시에 있는 김일제 석상


세번째 동기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위지 동이전은 우리나라 고대사의 거의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책이다. 마한과 진한, 변한의 언어가 달랐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한과 백제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언어가 다른 진한과 변한, 후일에 신라와 가야가 되는 그들은 마한과는 조상의 뿌리가 달랐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네번째로 위지 동이전에 진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줄 몰라서 마한 사람들이 농사일을 도와주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당시 삼한시대 때는 생업이 딱 두 가지 뿐이었다. 농사와 유목 딱 두 가지다. 진한 사람들이 농사 지을 줄을 몰랐다면 그들은 유목민이 틀림없다.

삼한 시대의 유목민족들은 스키타이, 흉노, 선비, 오환 네 종족이 있는데 환은 저절로 소멸되었고 스키타이는 흑해 연안에 있던 국가라서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접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진한의 뿌리는 흉노나 선비 두 민족 중에 하나가 되거나 두 민족 모두 신라에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김씨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도 처음부터 한반도에 생겨나서 지금까지 자손을 이어왔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반도로 들어와 함께 모여 살면서 오랫동안 문화와 풍속을 공유하다가 한민족이 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은 언제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국에는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바이칼 포럼이라는 연구 모임이 있다. 학술원 회원인 이홍규 박사가 회장으로 역사학자, 유전공학자, 언어학자들이 함께 모여 연구 발표를 하고있다. 작년에 이분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홍규 박사의 논문은 인류가 2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하고, 12만년 전 북쪽으로 이동한 아시아 유럽 원조들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헤어지게 된다. 아시아 원조 들은 4만년 전에 시베리아 바이칼 호에 도달하여 정착하는데 바이칼 호반에 온천이 많고 호수에서 온수가 분출되어 추위를 견뎌내기에 적절한 환경을 바이칼 호가 제공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눈꺼풀이 두꺼워지고, 코가 납작 해지며 몸통이 뭉툭한 체형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들이 우리 선조들로 15,000년전 빙하해빙을 계기로 북중국, 만주 한반도 북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는 한국인 Y 염색체 염기 배열과 가장 가까운 민족이 바이칼 브리아트 족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하였다. Y 염색체는 남자에서 남자로만 유전되기 때문에 Y 염색체를 추적하면 뿌리를 찾아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뿌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호에 다시 김씨의 뿌리로 돌아갈 것이다.

주석
1) 투후(秺候):흉노왕자 김일제에게 내려진 벼슬 이름으로 제후에 해당하는데 자손들이 벼슬을 계승할 수 있었다. 지금 중국 산동성 하택시 성무현이 한무제(漢武帝)가 하사한 투후의 영지였다. 이곳 주민들은 매년 김일제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투성(秺城)이라고 부르지만 주민들은 금성(金城)이라고 부른다. 김일제 선조 흉노의 본거지는 지금 오르도스, 간쑤성 란저우인데 이곳의 옛이름 역시 금성현(金城縣)이었다. 신라의 수도 경주 역시 금성(金城)이라고 불렸다. 신라 김씨가 흉노왕자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가정을 해보면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흉노인들은 왕이 거처하는 성을 금성이라고 불러왔다. 
 
한민족 뿌리찾기 바이칼 학회 모임을 마치고.  오른쪽에서 두번째, ­필자 왼쪽이 회장, 이홍규 박사
한민족 뿌리찾기 바이칼 학회 모임을 마치고. 오른쪽에서 두번째, ­필자 왼쪽이 회장, 이홍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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