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 (the normalcy) 이란 무엇인가? |
보스톤코리아 2014-05-26, 11:48:42 |
아들아, 사실 로보카 폴리는… 세월호 사건 이후 한 달, 뉴스홀릭으로 살았다. 사건이 있던 당일 방문했던 지인 집 TV 속 한국 뉴스를 통해 사고를 “목격”한 우리 집 꼬맹이는 그날 밤 그림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뉴스를 봤습니다. 오늘은 무슨 뉴스냐면 아주 큰 배가 바다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마는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구조대가 구하러 왔습니다.” 아이는 45도 기울어진 여객선 옆에 밧줄을 내려 사람을 구하고 있는 헬기와, 한글로 또렷이 해/양/경/찰이라고 적혀 있는 구명정 위에서 사람들이 손을 잡아 (구해주는) 그림을 그렸다. 한때 유아용 애니 로보카 폴리에 열광했던 덕에, 1학년 아이의 세계 속에서조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오는 ‘용감한 구조대’의 존재는, 우리를 사고의 공포로부터 방어하는 믿음직한 친구들이었다. 우리집 꼬맹이의 그림에는 자신이 눈으로 본 리얼리티와 잠재의식 속의 ‘신뢰’혹은 당연한 바램같은 것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연한 믿음과 소망은 배반당했고, 난 아이에게 해줄 말을 잃어버렸다. 어쨌거나 정부의 ‘정상적인’ 재난관리 시스템하에서 세월호 사고가 지금 수준의 ‘참사’가 되기는 매우 힘들었을테니까. 2014년,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하는 대한민국 “집권 초에 이런 악습과 잘못된 관행들,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더 강화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4월 29일, 국무회의에 앞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중). 비/정/상/의/ 정/상/화.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 모토였음을 알게되었다. 학자들이 혹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왜 이런 창조적인 국어 사용에 입다물고 있는 지, 그 정확한 이유는 (“씹 선비”소리 들을까봐?) 모르겠다. ‘꽃보다 남자’를 능가하는 이 애매한 표현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삑”소리가 자동으로 지원되는 느낌이다. (프깡기옘의 <정상적인것과 병리적인 것 > 오마쥬로 삼았…다면 아마 내용은 꼼꼼히 안 읽으신 듯.)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모토는 ‘비상식적인 관행 혹은 여러가지 부조리한 문제점들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일게다. 그러나 내게는 이 말이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범주화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곤 한다. 그러다가도 ‘정상’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어떤 종류의 규범 혹은 가치 판단이 내재되어 있는 까닭에, 국민인 나도 ‘국가 (라고 쓰고 대통령과 집권층이라고 읽는다)’가 허용한 정규분포도 (normal distribution)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비정상의 범주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 느낌은 어쩌면 호들갑이 아니다. ‘(사고 한 달이 지났는데) 세월호 때문에 소비 심리 위축 조짐이 있으니 경제를 회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을 때 즈음, 그녀가 강조해온 “비정상의 정상화”는1920년 미국 대선의 공화당의 슬로건이었던 “정상으로 돌아가자 (Return to Normalcy)”와 닮아있었다. 1920년 미국 대선, “정상으로 돌아가자”—그 뒷얘기 세계 제 1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도 사실 여러 모로 ‘정상’이 아니었다. 전쟁 중이었던 1917년 러시아에서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의 여파와, 참전과 함께 통과되었던 방첩법 (Espionage Act)의 도움으로 미국 전역에 적색 공포 (1st Red Scare)가 자리 잡았고, 이른바 “비-미국적인 (Un-American)” 것들이 배격당했다. 미국 사회는 노동조합 운동,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을 포함한 급진적인 혹은 ‘과격한’ 이데올로기에 극단적인 배격을 보였고 남동부 유럽 출신 및 아시아 출신에 대한 반이민 정서도 팽배해졌다. 1919년 말에서 1920년 초에 이르는 기간동안, 약 500여명의 위험한 사상을 가진 외국인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폭탄 테러가 뒤따르기도 했다. 이 시기는 흑인들에게도 혹독한 시기였다. KKK가 부활했다. 동등한 시민임을 입증하기 위해 도시로 이주해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숱한 흑인들을 타겠으로 한 린치, 이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면서 대도시 시카고에서 아칸소주의 일레느에 이르기까지 약 25건의 크고 작은 ‘유혈’ 인종 폭동이 발생했다. 비정상적인 광기의 시절임에 분명한 그 때,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정치력은 이미 바닥. “정상으로 돌아가자 (Return to Normalcy)”는 슬로건을 내건 공화당의 워렌 하딩 Warren Harding (부통령: 캘빈 쿨리지 Calvin Coolidge) 60퍼센트가 넘는 지지율로 가볍게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하딩 행정부가 극복하려던 “비정상”이란 적색공포와 반이민, 인종주의로 점철된 광기어린 사회분위기가 아니라, 1차 대전 이전 등장했던 각종 혁신의 물결이었다. 과거 칼럼에서도 언급했던 하딩 측근들의 축재와 부정 문제나 그 자신의 섹스스캔들은 차치하더라도, 여러 정책이 그다지 정상으로 보여지지 않는 과거로 회귀했다. 대표적으로 하딩-쿨리지-후버 대통령 재임기 미국은 공공연히 “미국의 일은 비즈니스”라는 말로 공급자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부자를 위한 감세, 산업자본가그룹을 위한 낮은 관세율 정책은 이른바 부유층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야 사회 전체에 득이된다고 보는 (스스로 수퍼 헤비급 부자였던) 재무 장관 앤드류 멜론의 “낙수효과 (Trickle Down Effect)”에 기댄 것이었다. 그 귀결은 알다시피 대공황. 그들만의 “정상”으로 돌아간 까닭이다. 지금 국가가 보여줘야할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와 같은 오묘하고 애매한 슬로건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예의와 공감능력, 그리고 공직이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뻔한 사실에 대한 인지능력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0] |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