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34
보스톤코리아  2014-05-12, 12:08:45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은 후궁의 소생으로 왕좌에 올랐다. 부왕 선조 역시 서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명종의 적자 순회세자가 13세의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왕이 되었다. 선조의 아버지는 덕흥대원군이며 덕흥군은 중종의 9남으로 창빈안씨의 소생이다. 

조선의 왕들은 항상 장자는 아니였지만 적통으로 맥을 이어오다가 11대 왕 중종의 장자인 인종이 후사 없이 짧은 치세로 생을 마감하고, 인종의 동생인 명종(문정왕후 윤씨의 아들)이 12살에 등극하였다. 그리고 그 역시 수렴청정 등으로 제대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아들인 순회세자(1551 – 1563) 마저 일찍 죽고나서 자신도 곧 이어1567년에 34세를 일기로 죽고나니 적통이 없어졌다. 

그래서 덕흥군의 세째 아들 하성군이 등극하여 선조가 되었다.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는 궁녀로 들어와 살다가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정숙한 용모와 고운 마음씨로 대비 윤씨(중종의 생모, 성종의 계비)의 사랑을 받았기에 중종의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다. 그의 고은 성품으로 인하여 문정왕후와의 관계도 돈독하였으며 안씨가 죽은 후에는 문정왕후가 그녀의 자식들을(영양군, 정신옹주, 덕흥군)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명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니 명종비 인순왕후가 안씨의 소생인 하성군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결국 선조는 조신操身한 할머니 덕에 왕이 된셈이다.53)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1567년에 16세로 등극하여 처음에는 인순왕후가 섭정을 하였고, 2년 후부터 친정을 하여 1608년까지 41년간 재위하였다. 그는 조선 왕조에서 처음으로 적통이 끊어지는 바람에 서자의 후손이면서도 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후궁 소생의 아들 즉 아버지 덕흥군이 서자이고 자신의 서자의 후손이라는 신분과 당시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의 이념의 한 가운데서 많은 자괴감으로 평생을 괴로워 하였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 박씨도 후사가 없었다. 광해군은 후궁 공빈의 둘째 아들로 형 임해군를 따돌리고 왕위에 올랐는데 그 역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인왕후가 1600년에 46세로 죽고, 1602년 선조는 19세의 인목왕후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1606년에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생산하자 당시의 실세인 유영경이 적통론을 내세우며 광해군을 폐세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갑자기 급사하는 바람에 당시의 적자 영창대군은 2살밖에 되질 않아서 유영경의 주장이 받아 드려지지 않았고 광해군이 즉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국은 유영경일파가 몰락하고 대북일파가 정권을 잡는 일대 요동이 일어났다.(문경세재를 넘나드는 상인들을 상대로 도적질을 하던 일곱명이 체포되면서 정국은 소용돌이를 쳤다. 그들의 정체는 서인인 전 영의정 박순의 서자인 박응서를 비롯하여 모두 고관들의 서자들이었다. 소위 ‘칠서의 옥’, 이 사건의 위관이 대북파의 영수 이이첨이었으며 박응서가 이이첨의 계략에 빠져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과 함께 영창대군을 옹립하는 거사를 했다고 자백하였다. 그리고 박응서는 관직을 얻었다. 역모의 당사자가 참형대신 관직에 오른 사건…, 사관들이 기록한 ‘광해군일기’에도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씁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광해군과 대북파는 1614년 어린 영창대군을 참혹하게 살해하였으며 대북파의 주장에 따라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을 사사하고 인목대비도 서궁에 유폐시켰다. 또한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임해군도 제거하는 등의 수 많은 패륜행위는 결국 정변의 구실을 주어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그리고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패륜의 왕’으로 낙인찍혀 왕으로서의 시호諡號도 받지 못한채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좌를 둘러싸고 이런 정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무예사에 길이 남는 아주 값진 책이 발간되었다. 임진왜란 직후 병법과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한 임금 선조의 지대한 관심속에 ‘무예제보변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이란 무예서가 편찬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선조가 승하하고, 결국 그의 아들 광해군때인 1610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은 훈련도감의 도청都廳으로 재직했던 최기남(崔起南, 1559 – 1619)이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뿐 정확한 저자는 미상이다.

53) 명종이 죽기 전에 병석에서 밝힌 이야기 가운데 하성군(선조)이 왕이 된 이유가 있다. 후사가 없는 명종은 왕재를 찾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어느날 그는 덕흥군의 아들들을 불러 자신의 익선관을 써보라 하였다. 두 형(하원군, 하릉군)은 별 말 없이 익선관을 썼지만, 하성군은 현직 왕이 쓰는 것을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사양하여 명종의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명종은 22년이란 긴 세월을 왕좌에 있었지만 뚜렸한 업적이 없다. 처음 8년간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있었고, 그 후 명종이 20살이 지난 후 친정을 할 때도 문정왕후는 어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고 욕을 퍼부었다. 명종의 치세 동안 그는 왕으로서 제대로 통치를 못하였고, 문정왕후와 을사사화로 권력을 잡은 왕후의 오라비 윤원형이 국정을 농단하였다. 설상가상 매년 이어지는 흉년으로 굶주리는 백성과 도적떼가 들끓었다. 결과적으로 국방도 허술해지고 그 틈을 타고 왜적들이 대대적으로 침범하는 ‘을묘왜변’이 일어났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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