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물줘라
보스톤코리아  2014-01-20, 11:52:11 
보스톤이 추우면, 한국도 추울까. 괜스레 걱정이다. 한국 24절기로 소한小寒을 지났고, 이젠 대한大寒 근방이다. 일년중 가장 추운 시절인게다. 별 이상한 케케묵은 절기변화를 꺼냈다. 하지만, 대한大寒 다음엔 곧 입춘立春이다. 봄이 오는 시기란 말이다. 밖은 한창 추위가 맹렬하다만, 입춘立春이란 두 글자에 마음만은벌써 따뜻하다. 곧 봄일게고 꽃망울 터질텐데, 설레고 황홀하지 않은가. 당겨서 입춘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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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선생 편지를 읽었다. 선생의 아드님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물론 한글번역이다. 번역을 먼저 읽고, 원문을 더듬었다. 번역된 편지문文이 차라리 시詩처럼 시조時調처럼 읽혔고, 원문보다 번역이 더 아름답다.

“올봄의 추위가 유난하더니
  꽃피는 일에는 도무지 차례가 없구나. 
  서울 꽃소식도 이와 같지 않더냐?’

금춘상냉이상 今春霜冷異常/화사무차서 花事無次序/경화역여차부? 京花亦如此否?”
(연암 박지원)
이 얼마나 문장이 화려한가. 세상일은 어지간히 어수선 하다. 날씨도 예사롭지 않아 매양 춥기만 하다. 어지러운 세상만사와 추위에 꽃망울 조차 피어야 할 시기를 헷갈려 한다는 말일게다.

지난 연말, 아이 성화에 농구코트에 나갔다. 집앞 초등학교였는데, 이른 봄기운이던가, 늦은 겨울 기운탓인가. 행화인지, 이화인지, 매화인지 꽃망울이 보였다. 하지만 이건 매화일거라 스스로 우겼다. 게다가 눈이라도 얹었다면 설중매雪中梅 망울이라 해야 할터. 설마했는데, 도무지 차례없이, 도무지 시도때도 없이, 도무지 아래위 없이 꽃망울이 맺혀있었다. 아직 봄은 멀었지 싶고, 한창 겨울 눈보라가 기승인데, 왠 꽃망울인겐가? 내눈을 의심했다만, 진정 그건 꽃망울이었다. 봄이 오긴 오는가 보다. 몇일 지난 오늘, 올초 지독한 추위에 꽃망울이 지지나 않았나 괜스레 걱정이다. 

‘맑다. 조카 해•아들 열 및 진원이 윤간 이언량과 함께 들어왔다.’  그해 무술년 일월 십육일(양력)에 충무공장군은 기록했다. 그 주일, 남해는 춥지만 맑았던 모양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한반도 남해안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던 해군사령부(陣)를 찾아 간다. 보스톤에도 한창 눈바람에 한차례 몰고 지나갔으니, 시공時空을 넘어 남해안 바닷가가 보스톤과 적당히 겹쳐져 포개졌다. 맑은듯 흐린듯, 날씨뿐만 아닐진대, 그해 무술년 남해바닷가에도 매화는 피었을 게다. 눈발 날리고 푸른 바닷물은 높아도 매화 꽃망울은 그윽했을거란 말이다. 푸른 남해 바다를 배경한 분홍매화가 흰눈에 슬쩍 덮혀 있다면. 

퇴계선생은  ‘매화에 물줘라’ 고 유언으로 말씀했단다. 과연 퇴계선생답다. 선생은 매화를 ‘매형梅兄’이라 불렀다니 대단한 매화사랑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눈이 덮혔어도 언 눈을 뚫고 소리가 들린다. 내 귀에만 들리는가? 봄이 오고 매화가 움트는 소리가.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에 내가 다시 찾아오리라.’
  (창세기 18:14, 공동번역)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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