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21 회 |
보스톤코리아 2013-11-11, 13:25:44 |
어느새 다섯 해를 훌쩍 넘겼다. 그녀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은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잊히지 않을 듯하면서도 눈에서 떠나고 멀어지면 잊히며 사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눈에서 떠나고 멀어진다 해도 가슴에 깊이 남은 사람은 그리 쉽게 잊힐 리 없다는 것을 새삼 또 느끼고 말았다. 그렇다, 그녀는 그렇게 우리의 곁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오늘도 '예술혼의 불꽃'으로 타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그녀의 혼불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와 훑고 지난 요 며칠 몸 앓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녀가 내 가슴에 남은 불씨를 흔들어 혼불을 놓고 말았다. 엊그제는 지인의 안내를 받아 박경리 선생의 문학관(문학공원)에 다녀오게 되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참으로 들러보고 싶었던 곳인데 늘 머뭇거리다 그 시간을 놓치고 말았었다. 이번에는 꼭 둘러보아야겠다고 마음에 생각을 담고 있었기에 귀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멀리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깊은 그리움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선생이 기거하시며 텃밭에서 삶의 꿈과 희망과 소망을 일궜던 그 자리에서 선생의 숨결을 만나며 멈추지 않는 아니 누를 수 없는 펄떡거리는 내 심장 소리에 나도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렇다, 그녀는 아직도 내 가슴에 예술혼의 혼불로 남아 내 영혼을 깨우며 흔들어 놓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모두 잊히는 것이 아님을 가슴으로 담은 사람은 여전히 가슴에 숨결로 남아 멈추지 않고 흐른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 그녀는 그렇게 내 가슴에 말 없음으로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걸었던 너른 마당의 뜰을 거닐어 보고 손수 일궜던 텃밭의 흙내를 맡으며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안방에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뒷꼍의 잘자란 나무 몇 그루와 꽃나무 그리고 풀가지 끝을 따라 올라보니 너른 하늘이 보였다. 선생의 문학공원(문학관)을 지인과 함께 찾았을 그 시간에 서울의 한 중학교의 40여 명의 꿈나무들이 먼 길을 찾아와 있었다. 마침 안내를 맡은 분의 설명은 시작되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설명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운 맑고 싱그러운 꿈나무들의 뒤를 따르는 일은 내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꺼지지 않는 혼불로 남아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가슴에서 뭉클하며 오르는 감동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선생의 옛집을 들어서며 툇마루에 벗어놓은 꿈나무들의 오색 빛깔의 신발을 바라보며 이미와 아직 사이에 흐르는 '진초록 희망'을 보았다. 아직은 희망이다. 이처럼 꿈나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한 선생이 일궜던 그 텃밭의 씨앗은 해마다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선생의 평생 일궜던 텃밭만큼이나 선생의 문학 정신은 우리 역사의 한 단편이며 선생의 삶은 한 시대의 산 증인이었다. 그 어떤 문학이나 예술이나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를 보더라도 삶을 벗어난 것은 무의미하지 않던가. 선생은 그렇게 말 없음으로 몸소 실천하며 삶을 일구고 사셨다. 삶이 선생의 문학이었고 문학이 바로 선생의 삶이었다. 꿈 / 박경리 원주 와서 넓은 집에 혼자 살아온 것도 칠팔 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방문 열면 마루방 덧신 발에 걸면서 한숨 쉬고 댕그머니 매달린 전등불 믿기지 않았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정수리 자르며 지나가는 시간 저승길 헤매고 있는 거나 아닐까 글을 쓸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선생의 이 시편을 가슴으로 만나며 어찌 이리도 아리고 아픈지 모를 일이다. 그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했던 시간을 말이 아닌 글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삶이 참으로 모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새 생명을 잉태하기까지 여린 새싹을 틔우기까지 어찌 터지지 않고 갈라지지 않고 찢기지 않고 귀한 생명을 만날 수 있을까 말이다. 선생의 평탄하지 않았던 그 모진 한(恨)의 세월이 승화되어 삶의 노래가 되고 귀한 생명의 노래가 되어 지금을 사는 우리와 후대들에까지 널리 불리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문학공원을 찾은 꿈나무들의 발걸음을 보며 그 속에서 나는 '진초록 희망'을 보았다. 꿈나무들의 발걸음을 보며….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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