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말하라
보스톤코리아  2013-10-28, 10:57:29 
가을이 너무 붉어 눈眼이 멀겠다. 해마다 붉지 않은 보스톤 가을이 없을텐데, 올해는 유난스럽다.  차라리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듯하다. 가을이니 온갖 것들이 씨를 낸다. 아내가 화분에 기르던 깨도 씨를 맺었다. 이젠 누렇게 변했는데, 깨씨가 작기는 작다. 깨향기는 고소할게다. 

‘누굴 찍으실 거예요.’  내 어머니에게 물었다.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정鄭모라는 정치인이 후보로 나왔을 때다. 기대했던 대답은 당연히 반대당 후보였다. ‘난 그 정鄭후보를 찍을 거다.’ 어머니 대답이었다.  왜요?  빠른 내 반문이다. 예상밖 대답이었으니 더 궁금했던 거다. ‘말 잘하잖아’ ‘게다가 잘생겼고 젊었잖아’  아아, 어머니. 어머니가 덧붙였던 대답에 내가 휘청였다. 그리고 불평했다. ‘어머니 아들이나, 잘 생겼고, 젊다고 말해 주세요.’  ‘제가 어머니 아들입니다’ 고 푸념했던 거다. 한마디 더 붙였다. ‘그렇다고 어머니 아들이 대통령에 출마할건 아닙니다. 말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요.’ 

여전히 말 잘하는 건 큰 자산이다. 레이건 대통령 연설은 부드럽지만, 힘차게 당겨 빨려 들어 갈수 밖에 없다. 클린턴 대통령이야 무슨 말을 덧붙이랴. 오바마 대통령도 십여년전 연설로 깊은 인상을 줬다. 발음은 또렷했고, 던지는 메세지는 명확했으니 말이다. 아직 정치 애송이에 젖비린내 폴폴 날 적인데 명연설이었다. 진정성을 실은 것처럼 들렸으니 더 괜찮았던 거다.  한국에선 요사이 누가 진정을 실어 무게 깊게 말하는가? 

지난 여름 포이즌 아이비로 고생 할적이다. 담당 의사 진료실에 써붙여 있던 사인이 이채로웠다.  앨러지 전문 진료실이다. ‘진한 향수를 뿌리고 오지 마시오’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가 갑니다.’ 거의 애원 수준이다. 향수에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환자로 찾아 오니 그럴거라 짐작했다. 냄새가 너무 진하면 민폐다. 좁은 엘레베이터 안이라면 기절 일보전 일게다. 향수 진하게 뿌린 사람과 같이 갇힌다면 코는 괴멸壞滅적 타격을 입을 거란 말이다. 숨을 제대로 쉴수 없어 방독면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논산훈련소 화생방 훈련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게다. 

그래도 향기는 풍기는 게 낫다. 그래도 진정성 향기가 백마디 빈 말보다 백번낫다.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 했는데, 추사선생이 말했던가. 책 많이 읽은 사람에게서 향기가 나고, 책의 기운이 풍긴다는 말이다. 잘 믿는 사람에게서  진한 믿음의 향기가 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게다. 형형한 눈빛에 한마디 입을 열지 않아도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면 백마디 말보다 백번 낫다. 꽃씨를 향기와 같이 받는 계절이다.  열린 방문 틈으로  책장과 마당에 핀 꽃을 보고 집주인 냄새를 맡는다. 

꽃씨와 도둑 (피천득)
마당에 꽃이/많이 피었구나
방에는/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꽃씨나 가져가야지

아내는 스킨로션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누구는 스킨로션 냄새에서 남성을 느낀다 하더니만. 아내가 그렇다고 내게서 풍기는 생生냄새를 더이상 즐기는것 같지는 않다. 모란이 향기가 없다 했던가? 봄꽃엔 향기가 부족하다 했던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 13: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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