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
보스톤코리아  2013-10-07, 11:34:39 
작가 최인호가 돌아 갔단다. 묘한 충격이었다. 뭘 모르던 내 청년시절이 그의 연재소설과 시작을 같이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간스포츠가 4면으로 창간되었을 때다. 신문에 ‘바보들의 행진’이 연재되었다. 고우영의 수호지가 있었고, 병태와 영자와 무대와 무송과 반금련이 아이돌 스타처럼 이름을 알렸다. 하긴 처음부터 끝, 게다가 광고까지 읽어 내려가는데,  삼십분이면 족하던 신문이었다. 그것도 같이 통학하던 고교동창과 나눠 읽었는데도 말이다. 그 시절에 고교야구 말고는 무슨 대단한 스포츠 기사가 있었겠는가?  

성탄절 즈음이면 선물이 전달되었다. 한국군대에선 무슨 과자 종합선물세트가 위문품으로 나눠지던 때다. 위문품봉지엔  어린 아이들이 썼던 위문편지가 뭉텅으로 들어있었다. 샘터 잡지도 빠지지 않았다. 읽을 거리에 구진하던 졸병들에게 샘터는 ‘전우신문’과는 격格이 달랐다. 잡지에 최인호의 ‘가족’ 이 실렸다. 작가의 아이와 아내와, 누나와 형, 그리고 콩나물을 꽁나물이라 쓴다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글에서 만났다. 당연히 군대 내무반에 몇권씩 과월호가 굴러 다녔다.  ‘가족’을 읽어 내면서 장가는 반드시 가야 할 거라 스스로 다짐했더랬다. 

고래사냥을 목청껏 불러 제꼈다. 소리 지르고 싶은데, 가사와 곡이 썩 잘어울렸던  거다. 젊은 시절엔, 괜히 그러고 싶을 때도 있는 모양이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고래 사냥, 최인호 작사)

처남이 아내를 통해 소설 ‘상도’를 보내왔다. 물경 여섯권인가 되었는데, 아내는 무겁게 그걸 운반해 왔다. 아직 문체를 눈여겨 볼 처지는 아니었다.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읽었다. 계영배와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위태한 막대기 위에서 내려올수도 더이상 버틸수 없을때는 한발 더 나가라는 말이란다. 말이 매우 위태하고 모질다.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더 이상 선택은 없으니 그냥 한발 더 디뎌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서늘하다만 틀리지 않는 말이다. 소설에서 임상옥에게 추사가 했던 준열한 충고다.  하지만 이 소설은 책보다는 연속극이 더 쉬웠고, 흥미진진 하더라. 
살려면 놓아라. 놓아라 그래야 산다. 하나님이 간곡히 말씀 했단다. 벼랑에 매달린 사람을 향해 부탁한 거다. 밤이었을 것인데, 하나님의 음성이 오히려 간절하다. 살려주십사 소원하던 사람이 고개를 흔들었고, 다시 소리쳤단다.
‘거기 누구 다른 사람없어요’ 

한데,  하늘의 음성은 틀림없을 진저. 새벽은 쉽게 왔고 서서히 밝아졌을 적에, 매달린 그 곳에서 땅까지는 오직 한 척. 그냥 손을 놓는다면, 사뿐히 땅에 닿을 수 있는 높이였단다. 하지만 얼마나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지는 몰랐으니, 생고생을 자초한 거다. 놓으라 할때 그냥 놓아야 한다. 내려오라 할 때 내려오는 게 고생 덜하는 거다. 한발 더 나가라 할 때 더 나가는게 사는 길이라는 말일 게다. 백척간두진일보!
참 작가를 청년작가라 했는데, 소설을 읽었던 나는 청년독자라는 말인가. 하긴 아내 책꽂이엔 그의 책이 몇권있다. 공항에서 집어든 ‘가족’ 단행본을 꽂아서 도왔으니 청년독자가 아니라 할수도 없다. 청년의 시대가 서서히 간다. 다른 청년들 시대가 밀려온다.  그가 남긴 말이 은혜롭다.  ‘주님 오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편 18:3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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