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전히
보스톤코리아  2013-09-02, 12:39:44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반 세기 전 오늘인 1963년 8월 28일은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 The Great March on Washington for Jobs and Freedom>이 있었던 날이다. 이날, 25 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흑인 민권운동의 대부 마틴 루터킹은 여덟 번 째 연사로 연단에 섰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그날 킹 목사의 연설은 5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왔던 흑인 민권 운동사의 정점에 선 기념비적인 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레토릭은 상당히 강렬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꿈의 영역 반대편에는 흑인들이 매일매일 직면하는 암울한 현실이 있었다. 만약 그 현실에 대한 분노 혹은 그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킹 목사의 “꿈”은 그것이 주는 레토릭만큼 강한 의미를 지니진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하는 연설이 다름 아닌 <(흑인들의)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즉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다. 

짐크로우 법 
워싱턴 행진에서 킹목사가 연설했던 1963년으로부터 대략 한 세기 전. 남북전쟁 (Civil War)이 북군 (Union Army)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와 함께 몇 가지 헌법상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수정 헌법 13조는 “미국에서의 노예제 종식”을, 수정 헌법 14조는 “흑인들의 시민권”을 헌법적으로 인정하였다. 게다가 수정 헌법 15조는 “피부색, 인종, 과거의 예속상태에 의해 시민의 투표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년이 지나도록 흑인들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백인인 미국시민과는 다른 종류의 시민이었다. 왜 여전히 흑인들은 (킹 목사가 연설에서 한 표현을 빌려보자면) “거대한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빈곤의 섬”에 유배된 채로 살아야 했고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의 공포에 희생되고 있었”으며, “미시시피의 흑인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뉴욕의 흑인들은 마땅히 투표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흑인 차별의 원인은 결과만큼이나 복잡 다단하겠지만, 20세기 중반 무렵 민권 운동은 무엇보다도 19세기 말엽 남부 지역에서 앞다투어 만들어진 일명 짐 크로우법 Jim Crow Laws에 주목했다. 짐 크로우법들의 가장 악명 높은 부분은 흑, 백간 인종 간의 분리 정책으로, 19세기 후반 과거 남부 연합에 속해있던 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공 기관, 공립 학교, 대중 교통, 숙박, 심지어 개수대까지 백인 전용과 유색인종용으로 나누는 것을 합법화했다. 

1890년대에는 분리되었어도 평등할 수 있다는 separate but equal 원칙을 내세운 대법원 판결까지 등장했다. 1954년 브라운대 토피카 판결이 공립학교의 인종간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인종간 분리 정책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나 1950년대 말, 60년대 초의 프리덤 라이드 Freedom Ride  혹은 Sit-ins 운동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63년 당시까지도 인종 분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복잡한 유권자 등록, 문맹시험 등 효과적이고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투표권에서 배제당한 흑인들이 부당한 현실을 정치적으로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짐 크로우 법? 
어쨌거나 1964년 제정된 민권법과 (Civil Right Act, 1964) 1965년 제정된 투표권법 (Voting Right Act, 1965) 등은 수정헌법 13~15조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긴 이야기를 짧게하면 민권 운동의 열매일 것이다. 그렇다면 킹 목사가 이야기한 꿈은 이루어졌을까? 

최근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에서 제기된 <뉴 짐크로우>라는 개념은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을 할 것이다. 가령 <뉴 짐크로우>의 저자 미셸 알렉산더는 흑인 민권 운동의 형식적 성공 이후 이에 대한 미국사회의 반발로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흑인을 타겟으로하는 대량 투옥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새로운 인종 통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복잡한 이야기지만, 미국내 교도소 수감자의 절반 가까이가 흑인인 상황, 백인대 흑인 수감률의 현격한 차이, 혹은 백인 남성의 흑인 여성에 대한 살인보다 흑인 남성의 백인 여성에 대한 성추행에 대한 처벌이 훨씬 더 무거운 상황 등은 단지 흑인들이 더 많은 범죄를 일으킨다는 설명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2013년,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정의, 바로 지금. 
지난 달 비무장상태로 걸어가던 흑인 소년 트레이븐 마틴으로부터 “심리적인 위협을 느껴” 몸싸움 끝에 살해한 조지 짐머만 사건 이후, 총기소지와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에 대한 논쟁, 그리고 인종의 문제까지 논쟁이 다양했다. 어쨌거나 짐머만이 2급 살인이 아니라 정당 방위로 무죄 판결이 났던 법적 근거는 그가 (주관적으로) 느낀 “심리적 위협”이었다. 2013년 스키틀즈와 아리조나 음료수를 들고 후드 티를 입고 걸어가는 소년에게서 느낀 심리적 위협의 근거는 무엇일까. 1963년 킹 목사가 “바로 지금”의 정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2013년 바로, 지금 필요한 정의는 여전히 남아있는 편견의 재생산 구조를 종식시키는 복잡 다단한 노력일게다.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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