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화려한 휴가”
보스톤코리아  2013-05-24, 00:38:17 

편/집/국/에/서

민주화가 죽었다. 적어도 '일베'에서는 그렇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준말인 극우 사이트 일베는 '민주화'란 단어의 의미를 죽였다.


한 여성 그룹 멤버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멤버들의 개성을 존중해요. 우리는 팀원들을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베 사이트에서 맴돌던 '민주화'가 공중파로 드러난 계기였다.


일베에서 민주화란 상대방 의견에 대한 찬성, 반대를 표시하는 중 반대 대신에 쓰이는 말이다. 부정적인 의미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끌어 내린다는 뜻이다. 일베충(일베 회원을 일컫는 말)들은 민주화란 단어를 휴지처럼 구겨버린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맞아 더 극성이었다. 신 군부의 비상계엄령 선포에 반발, 학생들과 시민들이 총칼로 짓밟는 특수부대에 맞섰던 항쟁을 일베는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전두환 장군이 탱크로 밀어 버린 것이라고 호도했다. 5.18 희생자의 관을 두고 '홍어 택배'라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뿐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습적으로 '빨갱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윤창중 성폭행 피해자를 '전라도 꽃뱀'이라 칭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희화화하는가 하면 '운지'라는 말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조롱했다. 한국 여자들을 '김치녀'라고 비하하고 '다문화'를 혐오한다.


한국이 일베로 골머릴 앓는다면 일본은 아베가 국민을 들끓게 하고 있다. 아베 노믹스로 일본 경제에 긍정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과거 침략역사를 부인하고 제국주의 시절을 되살리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어느 쪽에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침략의 정의를 갑자기 바꾸어 버리는 아베의 발언은 민주화의 정의를 바꿔치기한 일베의 행동과 흡사하다.


아베 총리는 5월 12일 항공자위대 기지 시찰에서 731이라는 편명이 찍힌 조정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얼굴엔 미소를 담았다. 731부대는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곳. 아베는 우연의 일치라고 변명했다. 그는 얼마 전 시구 행사에서 자신이 개정하려 하는 평화헌법 96조를 연상시키는 96 배번을 달고 나왔다. 우연은 반복되지 않는다.


총리가 되기 전 그는 “한국엔 기생집이 많아 위안부가 일상적”이라며 위안부를 폄하했다. 총리가 된 후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신사참배도 미국의 국립묘지인 알링턴과 같다고 합리화했다. 주변국들의 비난을 사고 있지만 일본인의 70%가 그를 지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베 총리가 행하는 일련의 망언에는 결이 있다. 즉 부국강병이 그것이다. 중국에게 세계경제 2위를 내주고, 전자 및 문화산업에서 한국에게 주도권을 내주는 등 위기를 느낀 일본인들에게 부국강병은 분명히 매력적인 이슈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극우 이념을 자극해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패배의식을 바꿔보려는 의도다. 하지만 그 출발이 자신의 죄에 대한 부정이니 보지 않아도 결말이 훤하다. 왜곡된 역사관 확립 및 교육으로 그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떳떳하지 못할 것이다.


아베가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비하면 일베의 목적은 부질없다. 대부분의 일베충들은 일일 베스트 글에 오르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직 대통령을 외국인들에게 욕하게 하는 등 더 자극적이고 과격한 내용을 담아낸다.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월 접속자 수가 2백만에 육박한다. 때로는 유명대학 학생, 의사, 변호사 등도 일베충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주로 일베에서 거침없이 배설하는 것으로 쾌감을 얻는다. 주요 공격대상은 좌익(진보와 민주당), 호남, 여성, 다문화 가정 등이다. 배설과 혐오, 왜곡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다수 일베충들은 목적이 없다. 그들의 혐오와 왜곡은 하나 둘씩 그곳을 넘쳐 사회전반의 여론으로 스며든다. 그러니 전체로 보면 어떤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이 비난하지 않는 대상을 살펴보면 맥락을 잡지 않을까.


2009년 만들어진 일베는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대세로 자리했다. 극우 보수인사로 손꼽히는 조갑제 씨는 일베의 극우 게릴라들이 박근혜 당선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했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일베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비난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선거는 끝났다. 정치적 의도에서 일베의 존재를 부추겼거나 또는 눈감아 주었다면 이제 그 끈을 놓아야 한다.


일베는 제대로 역사를 교육 받지 못한 왜곡된 교육의 산물이다. 3.1절과 4.19를 부정하고 5.18을 폭동으로 인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역사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아베와 출발점이 같다. 아베 총리는 주도하지만 일베는 이용당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보수든 진보든 자유 민주주의가 기반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문제다. 북한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다. 민주주의가 죽은 사회를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베의 ‘화려한 휴가’도 끝날 때가 됐다.


*화려한 휴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반항하던 학생들을 진압키 위해 파견된 특수부대의 작전명.

장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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