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남편이 쉬는 날이라 함께 보내게 되었다. 날씨도 꾸물꿀물한 날이었지만, 요즘 남편이 살이 많이 빠져 걱정인데 허리까지 아파 고생하는 중이라 골프는 어렵겠고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가까운 곳에 가서 짬뽕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집의 먹을거리를 쇼핑하지는 말에 생각하다가 특별히 필요한 것은 없고 과일이나 살까 하고 말하니 그럼 사과를 사자고 한다. 우리 집은 주식비에서 다른 음식비보다 과일값의 지출이 높은 편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집에 없어 마켓을 자주 가지 않지만, 여전히 과일을 좋아해서 계절에 따른 과일값의 지출은 줄지 않는 편이다.
남편에게 요즘 한참 사과 철이니 사과밭에 들러보면 어떻겠냐고 얘길 하니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둘이는 사과밭에 들러보기로 했다. 세 아이가 어려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맘때쯤이면 Apple Picking을 가서 사진도 찍고 사과도 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세 아이와 사과밭에서 즐겁게 보낸 그 시간 중에 남편은 늘 비지니스로 바빠 참석하지 못했었다는 생각을 문득 처음 해본 것이다. 잠시 세 아이와 즐거웠던 지난 시간의 추억과 함께 사는 일이 바빠 그 시간을 놓치고만 남편에게 섭섭함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사과밭은 늘 다니던 곳
로 가기로 했다. Mack's Apples는 Exit 4, Rt 93 Londonderry, NH에 있는 곳이다. 사과밭에 도착하니 꾸물거리던 하늘도 조금씩 개이며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이 아닌 주중이라서일까. 아니면 아직은 이른 탓인지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오간다. 가끔씩 꼬마들을 데리고 젊은 부부들이 사과밭을 오가며 즐거운 아이들의 표정과 웃음 그리고 행복을 카메라 렌즈에 담을 뿐 사과를 따러 온 듯싶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과를 따러 사과밭에 온 사람은 우리 부부 두 사람인 듯싶었다.
사과의 종류도 많지만 새콤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Honeycrisp apple을 주로 사는 편이다. 사과밭에서도 종류가 다양하니 좋아하는 사과 이름을 말해야 그들이 안내해준다. 우리가 찾는 Honeycrisp apple은 사과밭 저 끝쪽에 있다고 설명을 해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남편과 함께 우리는 먼저 돈을 지불한 사과를 담을 쇼핑백 둘을 하나씩 들고 그 끝쪽을 향해 걸으며 사과밭에서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사과밭에 올 줄 알았으면 카메라를 준비했을 것을 아쉬움이 들었지만, 이내 핸드백 속을 여기저기 들춰보니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있어 몇 컷을 담아왔다.
Apple Picking의 시즌은 이번 주 주말부터 시작해서 Columbus Day(10/08)가 제일 바쁜 날이라고 일러준다. 느닷없이 방문하게 된 이른 시기의 사과밭 방문이 우리 부부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삶이라는 것이 어찌 늘 마음의 계획대로만 될까 말이다. 가끔 이런 날도 있어 사는 얘기가 하나 늘고 추억이 하나 더 늘어 지난 얘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사는 일이 밋밋해질 무렵 세콤 달콤한 Honeycrisp apple 맛 같은 지난 추억 하나 꺼내 입가에 미소 하나 지을 수 있다면 더 없을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행복은 작은 곳에 있는 것을 말이다.
남편이 사과밭에 주렁주렁 달린 사과 중 더 맛난 사과를 고르려 나뭇가지의 사과를 향해 애쓰는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세 아이들 어려서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이렇듯 지난 일들에 대한 추억으로 감사가 차오르고 지금의 모습으로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먼 훗날의 큰 행복을 위해 오늘의 작은 행복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인생에서 특별한 삶이란 이렇듯 작은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을 또 깨닫는 하루였다. 파란 하늘 아래의 사과밭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나무들이 오색 찬란한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세 아이 없이 우리 부부 둘이서 사과밭에 들러 사과를 따다 보니 새삼 웃음이 났다. 남편이 사과밭에 와서 사과를 직접 따보기는 처음이라는 얘기를 한다. 푸른 하늘과 짙푸른 사과 잎사귀 틈을 오가며 볼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참 좋았다. 싱그럽고 푸릇하게 일렬로 서있는 사과나무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달린 사과나무의 풍경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을의 특별한 선물이다. 이렇듯 푸른 가을은 눈앞만 보지 말고 멀리 보라는 가르침을 주는가 싶다. 지금의 현실이 버겁더라도 잠시 쉼을 갖고 높은 하늘과 먼 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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